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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서울의 봄 대학생 시위 현장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국민들은 민주적 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전두환을 중심으로 신군부의 정권 장악을 하자 이에 맞서 학생들은 1980년 봄부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점차 민주헌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크게 일어났는데, 5월에 접어들자 학생들은 최규하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신군부의 정권장악 의지를 규탄하며 거리로 나왔다.

5월 14일과 15일 서울지역 대학생들은 계엄령 상황임에도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에 신현확 국무총리는 15일 담화문을 발표해 국회와 협의해 모든 정치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겠다며 학생들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학생들은 정부의 발표를 믿으며 향후 논의를 지켜보기로 했지만 신군부가 중심이 된 정치 상황은 국민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신군부는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5월 초부터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했다.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5월 20일로 예정되었던 임시국회를 무산시키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에 따라 모든 정치 활동이 정지되었고, 김대중과 김종필을 비롯한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이 체포되었으며, 김영삼은 연금되었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전국의 각 대학과 주요 도시에는 공수 특전단을 비롯한 군부대가 투입되었다. 또한 신군부는 5월 17일 단행된 조치에 항거해 일어난 광주 5·18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결국 서울의 봄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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