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5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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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열사를 추모하는 모임 사업보고
등록번호 : 00869788
날짜 : 1992.04.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지선
요약설명 : 준비된사항 1.민사소송에 대한 준비완료 2.1주기 추모행사 일정 확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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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열사를 아직은 민주화되지 못한 차가운 땅에 묻습니다-열사여! 이미 이기고 있는 싸움...등록번호 : 00174405
날짜 : 1991.05.1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사망한 강경대 열사를 추모하고, 노태우 정권 퇴진투쟁의 결의를 밝히고 있음.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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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열사 추모시집 발간기념회[리플렛]등록번호 : 00397493
날짜 : 1992.04.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중주
요약설명 : 1992년 강경대 열사 1주기 추모행사 안내 리플렛
사진사료 20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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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열사 및 6인 열사 추모제(추정) 사진등록번호 : 00961312
날짜 : 1991.05.1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신대학교
요약설명 : 강경대 열사 및 6인의 열사의 추모제에 참석해 시위하는 모습과 경찰과의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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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고) 강경대열사 민주국민장 영결식 필름]등록번호 : 01012736
날짜 : 1991.05.14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민족미술인협회
요약설명 : 강경대 열사의 영결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강경대군 폭행치사 잇따른 분신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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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열사 빈소 조문
등록번호 : 01023575
날짜 : 1991.05.0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강경대열사 영안실이 마련된 연세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줄을 지어 조문을 하고...
박물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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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열사 추모시]
등록번호 : 00397500
날짜 : 199*.00.0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이중주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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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강경대 열사 1주기 추도식 및 5월투쟁 선포식[포스터]
등록번호 : 00420397
날짜 : 1992.04.25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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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 연설 달력 포스터]등록번호 : 00954960
날짜 : 1996.00.0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촬영한 강경대 열사 추모행사에서 문익환 목사가 연설하고 있는 사진이 담긴 포스터....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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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사건요약설명 : 167149), 범국민대책위,전대협대책위,명지대대책위의 <고 강경대열사 폭력살인사건 대책회의>(등록번호 : 481688), 서울지역언론협의회의 <속보 제1호 쇠파이프에 꺾인 청춘-강경대를 살려내라>(등록번호 : 73245), 고강경대열사폭력살인규탄과공안통치종식을위한범국민대책회의의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과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제2차 대표자회의>(등록번호 : 365198),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변박장, 고한석, 최병수, 양길승의 <고 강경대 열사 검안 입회 관련 1차 보고서>(등록번호 : 3360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 전남지부 명의 성명서 <우리의 제자 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을 살려내라 >(등록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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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투쟁요약설명 : 조건으로 74건, ‘김귀정’ 조건으로 154건, ‘박승희’ 조건으로 28건이 있다. 고 강경대열사 폭력살인규탄과 공안통치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의 <5월투쟁의 광장에서 부활하라 강.경.대열사여!!-고 강경대열사 폭력살인 규탄과 공안통치분쇄를 위한 범국민결의대회 투쟁결의문>(등록번호 : 173889), 민주쟁취국민운동서울시본부의 <5월투쟁 현황>(등록번호 : 395529),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의 <전민련신문 33호_5월투쟁의 평가와 향후투쟁방향, 조직정비과제>(등록번호 : 55033), 고 박창수 위원장 사인규명을 위한 진상조사단의 <진상조사단 제5차 기자회견문>(등록번호 : 481902), 박창수가 부인 박기선에게 보낸 편지(등록번호 :...
사료 콘텐츠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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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들의 어머니 - 배은심요약설명 : 만나면서 투사로 변해 갔다. 의로운 죽음이 있는 현장에는 그곳이 어디든 그녀는 달려갔다. 특히 강경대의 죽음으로 촉발된 1991년 5월투쟁 당시에 가장 많은 죽음을 겪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이 모든 죽음들의 그 현장에는 내가 다 가 본 사람이고 …… 그래 인제 가서 보면은 인자 입관 직전에 화장해서 딱 옷 입혀서 인자 관 덮은, 덮을 직전의 얼굴만 내 놓고 보라는 그런 시간이 있어요. …… 아이고, 배가 얼마나 배고프냐, 가다가 빵 …… 사먹고 그래라고 인자 돈 만원을 거기다 넣고 …… 가다 뭐 사 먹어이, 배고픈께. 이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게 어쩌면 내가 그것이 보람이었을 거예요, 거. 그래서 내가 죽고 사는데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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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련과 분신정국 - 죽음의 굿판이었나, 희망의 몸부림이었나요약설명 :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죽은 지 채 5년도 되지 않은 해였다. 그리고 이 날부터 약 한 달간, 연이어 무려 13명의 꽃다운 목숨이 불꽃과 함께 사라졌던 것이다. 안동대에 다니던 김영균 군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김영균은 90학번, 전교조 1세대다. 고교 시절부터 학내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고 안동대 민속학과에 입학한 뒤에는 민속문화연구회를 꾸려 초대 회장으로 활약했다. 친구들은 말한다. "초반에 잘 나가던 아이들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 도서관에 처박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영균이는 달랐지요. 학생운동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이크 잡고 선동 잘하는 아이들은 글쓰기나 동아리활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