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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금도 아랑곳 없이 광주학생의 피는 끓고 있다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광주
요약설명 : 넘어서부터 역전 광장에서는 일찍 저녁을 먹고 나온 학생들에 의해서 새로운 시위대가 형성되었다. 이 시위대에는 나이 어린 사레지오중학교 학생들도 끼어 있었고 그 밖에 광주농고 및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혼합되어 있었다. 이들은 금남로로 솟아 올라오면서 경찰서를 습격하려다가 학동으로 빠져나가 학동파출소에 투석하였다. 그 순간 총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한 소년이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광주4·19 최초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이 소년은 후에 강정섭으로 밝혀졌는데, 전남대 의대 부속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강정섭의 신원은 4월8일에 가서야 밝혀졌다(4·19혁명부상자회 광주·전남지부 호남 4·1930년사 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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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선포에도 불구, 시위 더욱 가열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광주
요약설명 : 도중 충장로 파출소를 돌과 곤봉으로 파괴하고 역전통을 통과하여 월산동파출소에 이르렀다. 아직 남아있던 수 명의 순경들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시위대의 소리에 혼비백산해서 도망쳐버리고, 시위대원들은 곤봉과 돌멩이로 파출소의 기물이며 창살을 닥치는 대로 부셔버렸다.『전남일보』1960. 4. 26 3면 여기서 대열은 다시 양동시장을 거쳐 서중 남쪽 도로를 통과하여 일부는 충장로로 머리를 돌리고 일부는 서중 정문 앞을 통과하여 유문동파출소로 향하였다. 유문동파출소를 습격하고 난 시위대는 “광주학생 만세!”를 연창하면서 다시 금남로로 올라왔다. 그들은 금남로5가 입구 네거리에 이르기까지 학도호국단가를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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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시위대 원정
일자 : 1960.4.26
분류 : 시위 상황 > 수원
요약설명 : 26일 오후 5시 경, 서울로부터 10여 대의 트럭, 버스 등에 분승해 내려온 700-800명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등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수원 시내를 행진하였다. 이로 인해 삽시간에 수원시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합세, 대대적인 시위가 결행되었다. 시위대는 시내 팔달로3가 자유당 시당부, 그리고 경찰서 소방서에 투석하여 동 건물의 유리창을 파손하였고, 역전 중동파출소는 대파되었다. 경찰은 모두 피신하였으며, 전 시민들은 가두에 나와 시위대에 성원을 보냈다.『동아일보』1960. 4. 27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