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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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野 新당운동의 현장 - 대통령서거 이후 본격화한 각 그룹의 신당결성 움직임과 통합노력.
등록번호 : 00475137
날짜 : 198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조호걸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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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닥쳐오는 대통령선거 재야운동권 가닥잡기
등록번호 : 00528930
날짜 : 1992.07.0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장준영
요약설명 : - 87년실패 거울삼아 '후보론' 수위조절 - 김근태씨가 말하는 재야의 대선전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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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보도감시 제5호
등록번호 : 00040164
날짜 : 1992.11.17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언론운동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대책...
사진사료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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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사태와 관련, 전 노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 회부를 요구하며 가두행진하는 재야단...
등록번호 : 00711312
날짜 : 1994.11.0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등 10여개 재야단체 회원들이 2일 12.12 사태와 관련, 전 노 두 전직 대통령을 재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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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단체 대통령 후보 단일화 촉구 모임
등록번호 : 00709703
날짜 : 1987.10.3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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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입구에서 열린 학살원흉 노태우 부정집권 분쇄 국민대회에 참석한 많은 시민들
등록번호 : 00702702
날짜 : 1988.02.2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제13대 대통령 취임을 하루 앞둔 1988년 2월 24일,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등 재야인사...
사료 콘텐츠 3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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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대통령’ 장준하 의문사
요약설명 : ‘재야 대통령’의 칭호를 들었으며, 그는 일본군 진영을 탈출할 때 맹세한 바대로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되기 위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갔다. 1953년 창간한 월간지《사상계》를 통해 반유신 투쟁의 기치를 내걸었던 장준하는 강고한 어둠과 맞서는 강철 같은 신념과 불굴의 의지로 그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앞날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포천 약사봉 계곡 추모비에 적혀 있듯이 장준하는 “빼앗긴 민주주의의 쟁취, 고루 잘사는 사회, 민족의 자주·평화·통일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의 큰 봉우리가 되어 있다. 언젠가는 그의 사인(死因)을 반드시 밝혀 후대에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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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요약설명 :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장준하 선생의 삶은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길과 같은 것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유신시절 그는 ‘재야 대통령 장준하’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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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문익환, 김대중, 함세웅, 정일형, 문정현, 김승훈, 이태영 등 기독교 신구교와 재야 지도자들이 나란히 법정 피고석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얼마 전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민주구국선언문’을 작성하고 서명하고 지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한 분이 있었다. 하얀 수염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훤칠한 이마의 노인. 바로 함석헌 선생이었다. “피고들은 3·1절 기념미사가 거행된 명동성당에서 민주회복이라는 명목 아래, 소위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하여 청중을 선동하여 시위를 촉발시킴으로써 민중 봉기를 확산하고, 나아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이를 이용하여 현 정부를 전복,...
구술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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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권수호국민총연맹, 이승만 대통령담화에 대해 “한시바삐 실정파악하여 수습조치 강구하라”요청
일자 : 1960.4.16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13일 및 15일 두 차례에 걸쳐 발표된 대통령의 담화내용은 현 실정과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며 그 진의 또한 납득할 수 없는 것이므로 앞날을 염려하여 이 서한을 보내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시바삐 실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재야인사나 언론인들을 접견함과 동시에 마산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현명하고도 용단적인 조치를 즉각 강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공개서한은 또한 “만일 3·15부정선거의 진상을 우리 국민들과 같이 이 대통령이 알고 있다면 국민이 실망하고 불만을 품는 그러한 담화는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며 귀중한 대통령자리라도 물리칠 것”이라고 말하였다.『조선일보』1960. 4. 17 조1면 ;『동아일보』1960. 4. 17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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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에 정객 왕래 빈번
일자 : 1960.4.21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대통령은 국무총리급의 경력을 가진 재야 중진 인사 중 이범석·허정·변영태·윤치영·김현철 등을 경무대에 초치하였다. 이들 재야인사는 경무대 측 사정으로 21일 중 이 대통령과 회담하지 않았는데, 늦어도 23일 중에는 시국수습책을 위해 상당한 의견교환의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경무대의 초청을 받은 인사 중 21일 밤 『조선일보』기자와 만난 이범석과 허정은 경무대 방문계획이 있음을 시인하였다. 허정은 “오랫동안 내가 보고 느낀 바를 솔직하게 대통령에게 말하여 국가와 민족의 앞날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건설적 의견을 말하겠다”고 하였다.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범석은 “(대통령께)무슨 말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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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원 전면 개편은 난망(難望)
일자 : 1960.4.2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이승만대통령은 전(前) 정부 요직을 거친 5명의 중진재야인사를 초치하여 현 사태의 수습책에 관해 의견을 청취할예정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2일 오전 현재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경무대 방문은 사실상 중지된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이 대통령이 그들을 초치한 의도는 국무원의 대폭 개편을 전제로 한 인물의 천거 및 4·19 사태의 사후수습책 등을 청취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21일 이기붕 의장을 비롯한 자유당의 이재학·임철호·한희석 등이 경무대를 다녀온 후 재야인사들의 경무대 방문은 좌절된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동향에 비추어 국무원의 대폭 개편은 실현될 가망성이 희박해졌다. 다만 공석중인 외무부장관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