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9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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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M. 케네디가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응원하는 편지] 등록번호 : 00842633 날짜 : 1983.06.0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김영삼 총재님의 위대한 헌신과 숭고한 투쟁에서 총재님의 위대한 지도력에 무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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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12일 에드워드 케네디 성명문 등록번호 : 00924585 날짜 : 1992.08.1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케네디가 작성한 성명문으로 김근태의 석방을 환영하며 김근태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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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케네디 인권재단이 김근태, 인재근에게 보낸 아밀카 멘데스의 케네디 인권상 수여식 ... 등록번호 : 00927787 날짜 : 1990.11.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로버트 케네디 재단이 김근태와 인재근에게 보내는 초대장으로 과테말라 공화국의 아...
사진사료 5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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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케네디 인권재단의 초청강연회에 참석한 김근태 등록번호 : 00963505 날짜 : 1995.04.07 구분 : 사진필름류 > 필름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로버트 케네디 인권재단의 초청을 받아 참석한 초청 강연회에서 상패를 수여하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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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케네디 부인 에델 케네디와 시카고 가톨릭 매주교와 함께있는 김근태 사진] 등록번호 : 00928634 날짜 : 1993.11.18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로버트 케네디 부인 에델 케네디와 시카고 가톨릭 매주교와 함께있는 김근태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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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내한 환영 오찬에 참석한 인재근의 사진] 등록번호 : 00928728 날짜 : 1999.02.05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내한 환영 오찬에서 참석한 인재근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사...
영상사료 2건
더 보기박물사료 2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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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장로가 밀항과 해외 망명을 지원하고 있었다. 하비 목사는 미국 민주당의 중진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에게 윤한봉의 정치망명 절차를 밟아 달라고 요청했다. 윤한봉은 당분간 동양식품점을 운영하는 김동건 장로 부부의 보호를 받으며 점원 생활을 했다. 1981년 11월 하순,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간 윤한봉은 미국 내 한국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김상돈의 환대 속에 해외민주화운동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그는 맨 먼저 홍기완, 김동근, 이길주, 이인수 등과 더불어 광주수난자돕기회를 만들어 광주항쟁 부상자와 유가족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에 주력했다. 일정한 모금액이 걷히면 곧장 광주의 조아라 장로 앞으로 부쳤다. 이 단체가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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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의 방미 정상회담 요약설명 : ~ 1954년 8월 13일)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는 스스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어 미국으로부터 쿠데타와 집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여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1961년 11월 11일 ~ 1961년 11월 25일)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 회담에서 미국은 한일협정의 조속한 타결을 위해 박정희에게 힘을 실어 주었고, 베트남전에 한국군 전투병력의 파병을 요청했다. (1965년 5월 16일 ~ 1965년 5월 26일) 전두환 대통령과 레이건(Ronald Reagan)의 정상회담에서. 전두환은 5공 헌법 유지, 이른바 ‘호헌’에 대해...
구술 컬렉션 2건
더 보기일지사료 42건
더 보기- 민주당, 혁신계에 용공(容共)이라며 비난 일자 : 1960.7.19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혁신계활동 요약설명 : 19일 오후, 민주당의 김도연은 “중국을 유엔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혁신세력의 주장을 비난하였다. 그는 “세계정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비난하면서 미국의 케네디도 중국의 유엔 가입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산국가는 적성국가가 아니다”라는 혁신동지총연맹의 주장에 대해 공산국가가 세계의 적화 정복을 꿈꾸는 오늘날 어찌 적성국이 아니겠느냐고 말하였다.『조선일보』 1960. 7. 19 석1면
- 서울대 민족통일연맹 대의원대회, 남북학생회담 개최 결의 일자 : 1961.5.3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통일운동 요약설명 : 우리들의 목적일 수는 없다. 케네디의 뉴·프론티어 정신과 흐루시초프의 애교로만이 우리가 잘 살게 되리라는 이 허망한 미신이 어디서 연유되었든 간에 우리는 우리대로의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남북의 내 민족은 증오할만한 서로의 적이 아니라 이해와 협조와 동정을 아끼지 않아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적에 대해 우리의 총부리를 겨누어야할 결정적인 단계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투쟁을 위한 행위와 그 희생은 우리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대들 민족의 적이여! 우리는 그대들을 주시하고 있다. 보라! 유엔에서 스티븐슨 제안과 신민당 서민호 부의장의 발언을! 그대들은 무엇이라고 할...
- 케네디-이케다, 대한합동원조 토의 일자 : 1961.6.20 분류 : 한일협정추진 > 미·일 요약설명 : 오전, 케네디 미 대통령과 이케다(池田) 일 수상은 백악관에서 미일협조회담 제1차 회의를 열고, 한국의 군사혁명과 경제개발 원조에 대한 한국 측의 긴급한 요청에 관한 의견교환을 가졌다. 그러나 미 당국자들은 이케다 수상이 대한 원조계획에 일본을 가담시킬 것을 자청하고 나서지는 않았다고 밝혔다.『경향신문』 1961.6.21 석1면, 『동아일보』 1961.6.22 조1면. 당시 미국은 대한정책의 우선순위를 근대화와 경제개발에 놓고 있었는데,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 모임에서 한일관계가 정상화되지 못한 것이 한국의 경제개발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 했다. 이에 그는 한일관계의 개선이 주한미국대사 버거와 주일미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