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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를 바라본다
요약설명 :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예수의 말씀을 따른 이도 있었다. 광주항쟁 당시 홍순권은 시민군과 함께 도청을 지키다가 계엄군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세차장에서 일하면서 광주 북동지부에서 JOC 활동을 시작했다. 광주항쟁이 발생한 초기부터 참여하여 온갖 궂은 일을 해냈는데 시신 염습일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JOC 회원들과 도청 취사반, 수혈반 등으로 항쟁에 참여하다가,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서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문규현 신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옥 같지만, 거기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며, 세상을 위해 투신하는 가운데 하느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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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피해를 보상하라
요약설명 : 마지막으로 농민기도회를 열어 농협에 사건 해결을 촉구하려고 하였다. 1978년 4월 24일 광주 북동 천주교회에서 전국 각지의 회원 7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윤공희 주교와 농민회 지도 신부단의 공동 집전으로 열린 기도회에서는 함평고구마 사건 피해 보상과 농민회 탄압 중지, 구속 회원 석방 등이 요구되었다. 이날 농협의 전남도지부장과의 면담이 기동대에 의해 저지되자 농민들은 성당 뜰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고 이어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29일 당국이 피해액 309만 원을 보상하고 강제 연행된 이들을 석방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단식 농성 중에 연행된 이상국, 조봉훈이 석방되지 않아 단식 투쟁은 계속되었다. 결국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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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민주화운동의 선봉 - 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나섰다. 이에 가톨릭농민회는 4월 22일 광주 계림동성당에서 윤공희 대주교의 집전으로 기도회를 열었다. 농민들의 사정을 외면하는 농협을 성토하며 경과보고를 하고 미사를 드린 뒤, 농협도지부장 면담을 위해 행진을 시작했지만 경찰이 막고 나섰다. 그럴수록 투쟁의 의지는 더 강고해졌다. “함평 농민의 피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 고구마가 노변에 눈비를 맞고 굴러 밟히는 것이야 말로 온 농민이 짓밟히는 것과 같다. 농민들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가 보상되고 그들의 정당한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한다.” 함평고구마사건은 전국의 가농을 통해 진상이 폭로되었고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지만 농협은 해결을 미루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