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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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弔詞) [고 김상진열사 추모 내용]
등록번호 : 00875962
날짜 : 1975.05.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심지연
요약설명 : 고 김상진열사 추모 내용. 「동지여! 그토록 어렵게 그토록 숨막히게 죽음으로 그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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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상진 열사가 쓴 양심선언문,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 그리고 김상진 열사를 위한 다...
등록번호 : 00113702
날짜 : 1975.05.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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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상진 열사의 약력및 사건개요
등록번호 : 00483385
날짜 : 1975.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김상진 열사의 약력 및 사건개요
박물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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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열사의 양심선언문 낭독 육성
요약설명 : 김상진은 유신의 위법성과 독재정권의 허위성을 고발하는 양심선언문을 읽던 중 칼로 자신의 왼쪽 복부를 찔렀다.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다음날 서울대병으로 이송 중 앰뷸런스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김상진의 나이 만 25세였다. 유신이라는 시대 상황에서 청년은 죽음으로 폭압에 항거하며 이 나라 민주주의 제단에 피를 뿌렸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서둘러 화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서울대생 1,000여명은 5월 22일 ‘김상진 열사 장례식’을 거행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오둘둘사건’으로도 불리는 열사의 장례식은 긴급조치9호 선포 이후 일어난 첫 번째 유신반대 시위이다. 김상진 열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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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의 생애를 바꾼 세 친구
요약설명 : 문익환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민주열사들의 이름을 불렀다. “전태일 열사여! 김상진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민주 영령들의 이름이 하나씩 호명될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문익환의 사자후는 교정에 가득 찬 수백 개의 깃발들과 만장들마저 흐느끼게 했다. 영결식 이후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문익환은 학생들,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과 함께 했다. 문익환의 가슴속에는 수많은 송몽규와 윤동주가 넘실거렸다. 수많은 장준하와 전태일이 그와 어깨를 나란히 걸었으며, 숱한 박종철과 이한열이 깃발을 힘차게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들은 광화문과 시청, 을지로와 청계천을 함께 걸으며 “독재 타도! 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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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를 기억하다
요약설명 : 우리는 제도의 불합리와 불의를 한탄하며 앉아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도에 맞선 자기 실존의 의식의 문제이며 그리고 제도에 앞선 자기 실천의 문제이며 자기의 의식이 지향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는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987년 이한열의 장례식에서 문익환 목사가 온 몸으로 절규하며 외친 26명의 ‘열사여’는 민주영령들에 대한 초혼가이자 진혼곡이다. 언제 다시 들어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되치고 올라오는 어떤 묵직한 덩어리이다. 슬픔이라고 해도 모자라고 분노라고 해도 모자라고 폐부를 찌르는 절창이라고 해도 모자란다. (…) 전태일 열사여~ 김상진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이동수 열사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