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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비교연구회 발족
일자 : 1963.10.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408쪽 한일회담반대투쟁 시작 당시 민비연 학생들의 지향은 3·24시위 때 나온 서울대 문리대의 선언문과 결의문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이들은 한일회담을 통해 일본자본이 민족자본을 침식, 예속시켜 매판자본화 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우리의 결의와 행동이 ‘신제국주의자’에 대한 반대투쟁의 기점임을 만천하에 공포한다”고 하여 신제국주의라는 시각에서 한국이 처한 문제점을 파악하고자 했다. 민비연의 학생들은 이후 한일회담반대투쟁과 박정희 정권의 반민족적, 비민주적 행위를 규탄하는 항쟁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민비연은 1965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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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및 성토대회” 한일굴욕외교반대학생총연합회 주최로 열려
일자 : 1964.5.2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01~104쪽, 260~264쪽.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은 5월 초부터 준비된 것으로, 서울대 현승일은 민비연을 찾아온 동국대 박동인과 함께 한일회담반대데모의 서울대-동국대 연합전선 구축을 합의하고, 몇 차례의 회합을 가졌다. 처음에는 장례식 날짜를 박정희의 쿠데타일인 5·16으로 잡았으나, 시간이 촉박하여 5·20으로 재확정하고 각 학교 대표자들도 선정했다. 5월 16일 저녁에 서울대, 동국대, 성균관대, 건국대, 경희대 등 5개 학교 투위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 준비를 최종 점검하고 역할분담을 논의하였다.(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260~261쪽) 이전까지 학생들의 한일회담반대투쟁이 학교별로 진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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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태 등 공소장 내용 발표 정부전복기도내란죄를 적용
일자 : 1964.6.1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6월 3일의 대규모 시위 이후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시위 관련 학생들에 대한 체포와 처벌이 이어졌는데, 6월 17일 민비연 3인방인 김중태, 현승일, 김도현은 내란죄로 기소되었다. 이를 ‘1차 민비연 사건’이라고 한다. 민비연 사건’에는 1964년 ‘김중태 등의 내란 사건’, 1965년 ‘민비연 내란음모 사건’, 1967년의 ‘민비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이 있다. 이 사건들은 각기 명칭은 달랐지만 사실상 6·3항쟁이라는 한 가지 사안과 같은 인물들에 대한 상징적 정치 재판이라고 하여 이를 각각 1, 2, 3차 민비연 사건이라고 부른다. 1차 민비연 사건과 관련하여 당국은 최고 15년의 중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