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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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의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통지서]
등록번호 : 00927684
날짜 : 2003.03.2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문서로 김근태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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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생활지원금 신청접수 안내문]
등록번호 : 00952694
날짜 : 2005.04.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2005년 4월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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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분과위원회 위원 추천의뢰[수신:학술단체협의회,발신: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등록번호 : 00374017
날짜 : 2000.09.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학술단체협의회
요약설명 :
박물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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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육지표> 선언
요약설명 : 연락이 혼선이 빚어지는 등 차질이 생겨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서울에서 서명한 이화여대의 이효재 교수가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으며, 성내운 교수는 수사기관의 수배를 받던 중 1979년 1월 체포되어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되었다. <우리의 교육지표>선언은 탄압받고 감시당하는 대학에서 신분이 보장된 대학 교수들이 투옥과 해직을 각오하면서 유신독재의 반민주적인 교육실상을 용기 있게 폭로한 사건으로 유신정권의 병영적 통제에 대한 교육계 최초의 저항으로 평가된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교수 11명 전원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었고, 교수 구속에 대한 학생들의 항의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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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수 의문사 사건
요약설명 : 운동에 회의를 느껴 7층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7층에서 투신했다는 그의 시신은 상처 하나 없이 반듯이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의 투신 지점이라고 밝힌 병원 옥상은 쇠창살과 자물쇠로 잠겨 있는 곳이었다. 박창수의 석연치 않은 사인과 사망경위를 두고 검찰은 축소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진상조사단이 구성되어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단순 비관자살 사건으로 종결되었다. 이후 유족의 요구로 의문사진규명위원회(의문사위)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의문사위는 2004년 결정문에서 “국가안전기획부 요원의 개입 사실은 드러났으나, 국가정보원이 관련 자료 요청에 협조하지 않아 진상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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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곧 역사다
요약설명 : 밝히면서 절차에 따라 수집작업이 진행되었다. 2008년 초에 선생이 <민주화운동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보낼 자신의 몇몇 신상자료를 사료관에 기증했으니 찾아달라고 연락을 하셨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고이유서를 비롯하여 옥중에서 어머니 영전에 드리는 눈물에 얼룩진 편지 등 귀중한 사료들이 새삼스런 발견으로 다가왔다. 그의 적지 않은 법정자료들은 그대로 한국 민주주의의 수난사를 의미한다. 리영희 선생의 표현에 따르자면 ‘반문화적 권력의 박해’에 대한 확실한 물증이 바로 여기 소개하는 사료들이다.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들이 그렇듯이 리영희 선생의 그것이야말로 한 때 이 나라의 권력층과 그들이 만들어...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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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학생들, 유신 플래카드 등 소각
일자 : 1972.12.2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고려대 이념서클 NH회 회원인 정진영, 박영환, 윤경로 등은 고려대 정문에 걸려 있던 “한국적 민주주의 이 땅에 뿌리박자”는 현수막을 뜯어내 불태워 버렸다. ★민주화운동백서편찬위원회, 『민주화운동백서 인명편 3』,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2015,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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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중앙여고생들 연좌시위
일자 : 1975.4.1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국어교사인 양성우 시인이 2월 12일 광주 YMCA 강당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 참석해 유신체제를 비판한 시 「겨울공화국」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교직에서 파면당하자 학생 200여 명이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였다. 앞서 이 학교 교장 최태근(73)은 신학기 수업시간과 학급 담임배정에서 양교사를 배제했고, 개학날인 3월 4일에는 교무실 책상까지 치워버려 출근을 막았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5년 1월 양교사에 대한 복직권고 결정을 내렸지만, 학교측은 당시 자료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동아일보』 1975.04.02. 3면; 『중앙일보』 1975.04.02. 7면; 『동아일보』 1975.04.15.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