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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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사법부 결정에 대한 박원순 변호사 논고]
등록번호 : 00530560
날짜 : 1987.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옥경
요약설명 :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에서 국가권력이 보인 추악한 행태를 고발 목차 1.고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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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목사가 박용길장로와 박원순 변호사에게 보내는 옥중 서신 1990년 2월]
등록번호 : 00827122
날짜 : 1990.02.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박원순 변호사에게 쓴 편지(제137신)으로 환골탈태 민주적인 사람으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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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신[문익환목사가 박용길장로와 박원순변호사에게 보내는 옥중 서신 1990년 3월]
등록번호 : 00827123
날짜 : 1990.03.0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문익환목사가 안양교도소에서 박용길장로와 박원순변호사께 쓰는 편지(제138신)
사진사료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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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박원순과 함께 있는 인재근 사진]
등록번호 : 00928676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미국에서 박원순과 함께 있는 인재근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사진으로 안경을 쓴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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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배경의 체크무늬 정장에 갈색 넥타이를 맨 박원순의 증명사진]
등록번호 : 00962603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박원순이 초록색 배경의 체크무늬 정장에 갈색 넥타이를 매고 앞을 바라보며 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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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입구에 모형 감옥을 세워두고 양심수 석방을 위한 1일 감옥체험을 열고 있는 민주화...
등록번호 : 00710997
날짜 : 1996.08.0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영상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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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촛불을 지켜라!”
요약설명 : 한승헌 등 박정희 시대부터 민주인사들을 무료로 변론해온 원로급 변호사들부터 박원순, 이상수, 노무현 등 젊은 변호사들로 구성된 단체로 부천서성고문사건, 구로동맹파업 등 잇단 시국사건 재판에 헌신적으로 뛰고 있었다. 석방된 후에도 그는 여러 해 더 노동현장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1987년 대파업 이후 노동자의 권리가 크게 성장하면서 노동자 스스로 노동운동을 이끌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이론적 지도자가 아니라 노무사, 법무사,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이었다. 열정적으로 노동운동을 해오던 대다수 지식인 출신들이 현장을 떠나게 되었다. 한동안 갈등하던 그도 보다 전문적 능력으로 노동자를 돕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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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요약설명 : 벌떼같이 일어나 서울지구 국가배상심의회에 배상 신청서를 제출했다. 조영래는 홍성우, 박원순 등 동료 변호사들과 더불어 변론팀을 구성해 서울시를 상대로 치열하게 맞서 나갔다. 마침내 1990년 7월 24일, 대법원이 서울시의 상고허가 신청을 기각함으로써 사건이 종결되었다. 조영래는 망원동 수재민들을 원고로 하여 5년 10개월간의 법정 공방 끝에 시민들에게 승소의 기쁨을 안겨다주었다. 이 소송은 한국 사법사상 최초의 대규모 집단소송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사건 판결 면에서도 거대한 행정 조직에 맞서 힘없는 시민들이 승리했다는 놀라운 성과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천인공노할 부천서성고문사건 1986년 6월초, 부천경찰서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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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사건
요약설명 : 재판정에서 당당히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박원순, 고영구, 한승헌, 조영래 등 인권변호사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한 변호인단의 지원도 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듬해인 1987년 4월 29일에 열린 3차 공판에서 ‘보도지침을 널리 알리는 게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느냐’는 이상수 변호사의 질문에 <말>지 편집인 김태홍은 당당히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범죄 집단인 현 정권이 저지른 비행의 뒷면을 밝혀 줄 이 자료를 알리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꼭 한 달 후, 전국은 6월민주항쟁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글 안재성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