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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민주화를 위한 투쟁 과정에서 양심수들에 대한 변론을 적극적으로 맡아 민주화운동을 뒷받침한 인권변호사들의 활동이 펼쳐졌다. 이들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 사건을 공동 변론한 것을 계기로 1986년 5월 19일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하였다. 정법회는 1970년대에 정치적 사건을 변론한 경험을 축적하고 있던 시니어 그룹과, 1980년대에 노동 사건 등으로 변론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던 주니어 그룹의 결합이었다. 조준희, 강신옥, 이돈명, 한승헌, 홍성우, 황인철, 박원순, 조영래 변호사 등이 주축이 되어 1987년 6월민주항쟁 무렵까지 권인숙씨에 대한 부천서 성고문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김근태씨 고문 사건의 폭로와 변론을 비롯하여 서울 미문화원 점거사건, 망원동 수재사건, 구로동맹파업사건, <말>지 보도지침사건을 담당하는 등 반독재 민주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1985년부터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에 인권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인권보고서를 발간하여 주요사건의 배경과 경과를 세상에 알렸으며, 인권보고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포괄하는 인권백서였다. 이들은 1987년 6월항쟁을 이끄는 구심체였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민주세력의 많은 희생과 오랜 노력의 결과, 1988년 제6공화국에 들어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지게 됨에 따라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변론 활동에서 더 나아가 전반적인 법 제도와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조사·연구와 대안 마련이 요청되었다. 또 한편으로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신진 변호사 층이 대거 배출되었다. 억압의 소산인 인권사건에 대한 공동대응 특히 조직적 변론의 필요성 등 시대적 요구와 조건에 부응하여, 정법회가 발전적으로 해소되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신진 변호사 층이 중심이 되어 준비하던 청년변호사회와 함께 1988년 5월 2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창립되었다.

민변 창립이 가지는 의의는 첫째, 변호사 업무의 개별·분산적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단점을 극복하여 구조적으로 행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대응토록 하였다는 것과, 둘째, 전체 민주화운동세력 안에서 법률가단체로서 전문성과 합리성을 살려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위한 비판과 건설적인 대안 제시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1989년에 악법개폐의견서를 발간하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개폐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과 임수경 방북사건을 변론하고, 5·18 진상 규명·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거리시위(1995년 10월 16일), 안기부법·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항의농성(1996년 12월 30일) 같은 집단행사에도 참여 했다.

그후 2002년 11월에는 『한총련을 위한 변론』을 발간하였으며, 특히, 세계인권선언 선포일을 기념하여, 우리 사회의 인권상황을 총점검 하는 "한국 인권보고대회 및 토론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또 격월간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을 1998년 1월부터 발간하고 있다. 이 책은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발간된 반년간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과 1996년 8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발간된 월간지 『이달의 민변』의 맥을 잇는 것으로서, 민변 회원들의 활동 결과와 더불어 외부 인권단체의 자료, 법학자·인권운동가의 글을 함께 게재함으로써 법률·인권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서중석 저,『한국현대사 60년』 김정남 저,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편, 『민변백서 -민변 10년의 발자취』

사료소개

‘민변’ 조건으로 총 112 건이 검색되었다. 소장사료 중 민변이 생산한 <민변 6개월 회고>(등록번호: 430992)가 민변 창립 이후 최초의 문서다. 그에 의하면 6개월간 회원은 51명에서 59명으로 증가했고, 사무실을 임대하여 상근사무원을 두었으며, 상세한 재정상황도 알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리영희, 윤소영 교수 등을 초빙해서 강연을 들었으며 매주 금요일 노동운동, 통일론 등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를 10여회 개최하여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박종철, 권인숙 손해배상 사건들과 국보법 위반 등 형사사건 20여 건을 변론하였고 양심수 공청회를 열기도 하면서 각종 성명발표, 조사활동,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벌였음을 알 수 있다. 민변이 발행한 월간지 <이달의 민변>(등록번호: 98850, 98875, 98856, 98851, 98841, 98852, 24334, 24333, 24335, 373264, 98876, 98877, 98842, 98848 등)은 비교적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민변의 당시 활동과 관심사를 소상하게 살필 수 있다. <민변백서-민변 10년의 발자취>(등록번호: 88227)도 민변 10년의 활동을 담고 있는 사료다. 대한변협에서 인권위원으로 참여했던 민변 주체들이 작성한 <인권보고서>(등록번호: 336820, 336822, 039395, 389429 등)도 주요사료이다. 사진사료는 의외로 적어 5.18진상규명을 위한 가두시위 장면(등록번호: 740277) 등 2건이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민주화를 위한 투쟁 과정에서 양심수들에 대한 변론을 적극적으로 맡아 민주화운동을 뒷받침한 인권변호사들의 활동이 펼쳐졌다. 이들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 사건을 공동 변론한 것을 계기로 1986년 5월 19일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하였다. 정법회는 1970년대에 정치적 사건을 변론한 경험을 축적하고 있던 시니어 그룹과, 1980년대에 노동 사건 등으로 변론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던 주니어 그룹의 결합이었다. 조준희, 강신옥, 이돈명, 한승헌, 홍성우, 황인철, 박원순, 조영래 변호사 등이 주축이 되어 1987년 6월민주항쟁 무렵까지 권인숙씨에 대한 부천서 성고문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김근태씨 고문 사건의 폭로와 변론을 비롯하여 서울 미문화원 점거사건, 망원동 수재사건, 구로동맹파업사건, <말>지 보도지침사건을 담당하는 등 반독재 민주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1985년부터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에 인권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인권보고서를 발간하여 주요사건의 배경과 경과를 세상에 알렸으며, 인권보고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포괄하는 인권백서였다. 이들은 1987년 6월항쟁을 이끄는 구심체였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민주세력의 많은 희생과 오랜 노력의 결과, 1988년 제6공화국에 들어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지게 됨에 따라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변론 활동에서 더 나아가 전반적인 법 제도와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조사·연구와 대안 마련이 요청되었다. 또 한편으로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신진 변호사 층이 대거 배출되었다. 억압의 소산인 인권사건에 대한 공동대응 특히 조직적 변론의 필요성 등 시대적 요구와 조건에 부응하여, 정법회가 발전적으로 해소되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신진 변호사 층이 중심이 되어 준비하던 청년변호사회와 함께 1988년 5월 2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창립되었다.

민변 창립이 가지는 의의는 첫째, 변호사 업무의 개별·분산적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단점을 극복하여 구조적으로 행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대응토록 하였다는 것과, 둘째, 전체 민주화운동세력 안에서 법률가단체로서 전문성과 합리성을 살려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위한 비판과 건설적인 대안 제시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1989년에 악법개폐의견서를 발간하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개폐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과 임수경 방북사건을 변론하고, 5·18 진상 규명·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거리시위(1995년 10월 16일), 안기부법·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항의농성(1996년 12월 30일) 같은 집단행사에도 참여 했다.

그후 2002년 11월에는 『한총련을 위한 변론』을 발간하였으며, 특히, 세계인권선언 선포일을 기념하여, 우리 사회의 인권상황을 총점검 하는 "한국 인권보고대회 및 토론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또 격월간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을 1998년 1월부터 발간하고 있다. 이 책은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발간된 반년간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과 1996년 8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발간된 월간지 『이달의 민변』의 맥을 잇는 것으로서, 민변 회원들의 활동 결과와 더불어 외부 인권단체의 자료, 법학자·인권운동가의 글을 함께 게재함으로써 법률·인권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서중석 저,『한국현대사 60년』 김정남 저,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편, 『민변백서 -민변 10년의 발자취』

사료소개

‘민변’ 조건으로 총 112 건이 검색되었다. 소장사료 중 민변이 생산한 <민변 6개월 회고>(등록번호: 430992)가 민변 창립 이후 최초의 문서다. 그에 의하면 6개월간 회원은 51명에서 59명으로 증가했고, 사무실을 임대하여 상근사무원을 두었으며, 상세한 재정상황도 알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리영희, 윤소영 교수 등을 초빙해서 강연을 들었으며 매주 금요일 노동운동, 통일론 등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를 10여회 개최하여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박종철, 권인숙 손해배상 사건들과 국보법 위반 등 형사사건 20여 건을 변론하였고 양심수 공청회를 열기도 하면서 각종 성명발표, 조사활동,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벌였음을 알 수 있다. 민변이 발행한 월간지 <이달의 민변>(등록번호: 98850, 98875, 98856, 98851, 98841, 98852, 24334, 24333, 24335, 373264, 98876, 98877, 98842, 98848 등)은 비교적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민변의 당시 활동과 관심사를 소상하게 살필 수 있다. <민변백서-민변 10년의 발자취>(등록번호: 88227)도 민변 10년의 활동을 담고 있는 사료다. 대한변협에서 인권위원으로 참여했던 민변 주체들이 작성한 <인권보고서>(등록번호: 336820, 336822, 039395, 389429 등)도 주요사료이다. 사진사료는 의외로 적어 5.18진상규명을 위한 가두시위 장면(등록번호: 740277) 등 2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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