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북항쟁 (사북광산노동자대투쟁)
-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 원풍모방 노조사수투쟁
- 전국민주학생연맹·전국민주노동자연맹 사건(학림사건)
- 콘트롤데이타 노동쟁의
-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 오송회 사건
-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결성
-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결성
- 민중민주운동협의회
- 목동 철거민 투쟁
-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결성
- 대우자동차 노조민주화 및 임금인상 투쟁
- 구로동맹파업
-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점거농성사건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 KBS TV 시청료 거부운동
- 개헌서명운동
- 박영진 분신 사건
- 김세진ㆍ이재호 분신 사건
- 5ㆍ3인천항쟁
- 서울노동운동연합 사건
- 부천서 성고문 사건
-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 결성식 및 건국대 점거농성 사건
- 7ㆍ8월 노동자 대투쟁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결성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결성
- 대우조선 노조결성과 이석규 장례투쟁
-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
- 부정선거 항의 구로구청 점거농성 사건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결성
- 강원 탄광노동자 성완희 분신사건
-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결성
- 나라사랑청년회
- 전국노점상연합회 결성
- 전국농민단체협의회 결성
- 여의도 농민시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 이철규 의문사 사건
- 전국빈민연합 결성
- 해고노동자블랙리스트철폐투쟁
- 대우어패럴노조탄압사건
- 민주화추진위원회(깃발사건)
- 민중교육지사건
- 삼민투사건
- 교육민주화선언
- 제헌의회그룹사건
- 말지(보도지침)사건
- 서울남부지역노동자동맹(남노련)사건
- 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결성
-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결성
- 서울지하철노조파업
- 경동산업노조탄압과 노동자 집단분신
-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인노협) 총파업투쟁
- 1980년대 통일운동
박영진 분신 사건
1986년은 노사분규에 참여한 노동자가 급증한 시기였다. 노사분규의 원인은 임금인상과 체불임금이 주종을 이루었으며 1월부터 4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1986년 상반기 노동운동은 서울 구로지역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인금인상투쟁의 열기가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1986년 3월 17일, 서울 구로구 소재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이 인금인상투쟁 중 경찰과 대치 끝에 회사 옥상에서 분신했다. 450여 명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신흥정밀은 초임이 3080원의 저임금에다 기본근무시간이 9시간으로 강제되어 있고, 연차 월차 생리수당은 지급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진 회사였다. 이에 노동자들은 ①초임 4200원으로 인상 ②하루 기본근무시간 8시간 정상화, ③강제잔업과 철야 특근 철폐, ④부당해고 철회 등을 요구했다.
신흥정밀 노동자들은 1986년 3월 7일부터 지속적인 유인물 작업을 통해 노동상황을 알려나갔다. 3월 17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전 종업원과 함께 투쟁을 전개할 계획이었으나 회사 측이 미리 알고 점시시간을 일방적으로 연기해 방해함에 따라 박영진을 포함한 몇몇 노동자들은 식당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요구사항을 외쳤다. 즉각 경찰이 투입되고 옥상까지 밀려올라가 경찰과 대치하게 된 박영진은 온몸에 석유를 붓고 성명서에 불을 붙인 후 경찰이 물러날 것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방치한 채 동료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어내리는데 급급했다. 경찰들은 박영진이 쓰러질 때까지 10여 분을 기다렸다가 담요로 덮고 동료들을 경찰서로 연행한지 20분이 지난 다음인 3시경에야 강남성심병원으로 옮겼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 몸에 화상을 입었으나 “전태일 선배가 못다 한 일을 내가 하겠다. 1천만 노동자의 권리를 찾겠다.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 등의 말을 남기고 3월 18일 새벽에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측이 박영진의 부친을 기만하고 회유를 시도했다. 박영진의 부친을 찾아온 회사측 관리자는 10만원을 건네주면서 박영진의 퇴사를 종용하면서 퇴사처리 후 계속적인 치료를 해주겠다고 했다. 박영진의 부친이 이들의 요구를 거부하자 갖은 기만과 회유로 타협을 시도했다. 강남성심병원에는 사복경찰과 전경이 배치되었다. 경찰은 시신을 지키고 있던 노동자와 박영진의 운명을 지켜보러 온 문익환 목사 등 민주인사들을 강제로 귀가시키고 시신을 탈취하여 그들 마음대로 벽제화장터에서 화장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박영진은 1984년 9월 동일제강에 입사하여 1985년 3월 노조결성 후 노조사무장에 선출되어 민주노조건설에 핵심적 역할을 하다 강제해고 당하고 1985년 10월 신흥정밀에 입사했다.
주요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민주화운동관련 사건·단체 사전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보고서』 이원보 저 『한국노동운동사5』
사료소개
‘박영진’ 조건으로 총 109 건이 검색되었다. <고 박영진 열사가 여성 동료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등록번호 : 211071) 박영진이 분신하기 이틀전 자신의 생각과 심경을 담담하게 쓴 육필 편지, 이 편지를 쓸 당시의 박영진 열사 주변 정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자료, <박영진 동지의 약력과 투쟁경력> (등록번호 : 095213) 박영진의 성장과정, 의식화과정, 투쟁과정이 일지형식으로 쓰여진 자료, <경찰의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출입구를 몸으로 막는 사람들> (등록번호 : 700928) 박용수 사진, <노동투사 박영진 동지 장례투쟁 보고서> (등록번호 : 095104), <박영진 열사 장례식 팜플렛> (등록번호 : 326761) 박영진의 약력과 투쟁경력, 분신 이후 노동자와 민주인사의 투쟁 경과, 편지 내용 등 소개, <박영진의 장례식을 몰래 지켜보던 양주경찰서 형사들에게 노동자들이 달려들자 이를 말리는 문익환 목사와 이소선 여사> (등록번호 : 700981) 등은 시신을 둘러싼 긴박하고 암울했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1960년대
- 1970년대
- 전태일 분신>
- 청계피복노동조합결성투쟁>
-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민주수호운동>
- 광주대단지 사건>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결성>
- 김대중 납치사건>
-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긴급조치위반사건>
-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 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발족>
- 오글 목사, 시노트 신부 강제추방사건>
- 조선일보ㆍ동아일보 기자 해직 사태>
- 서울대생김상진할복자살>
- 장준하 의문사 사건>
- 3ㆍ1민주구국선언 사건(명동 사건)>
- 구속자가족협의회(구가협)>
- 「민주구국헌장」 사건>
- 동일방직사건>
- 함평고구마사건>
- YH사건>
- 민주청년인권협의회>
- 「우리의 교육지표」사건>
-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
- 안동교구가톨릭농민회사건(오원춘사건)>
- YWCA 위장결혼식 사건>
- 서울대생내란예비음모사건>
- 자유실천문인협의회문학인 101선언>
- 인선사(삼고사) 유령노조사건 >
- 병역문제대책위원회사건>
-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탄압사건>
- 카터 방한 반대시위>
- 1970년대 필화사건>
- 1970년대 언론탄압>
- 1980년대
- 사북항쟁 (사북광산노동자대투쟁)>
-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 원풍모방 노조사수투쟁>
- 전국민주학생연맹·전국민주노동자연맹 사건(학림사건)>
- 콘트롤데이타 노동쟁의>
-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 오송회 사건>
-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결성>
-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결성>
- 민중민주운동협의회>
- 목동 철거민 투쟁>
-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결성>
- 대우자동차 노조민주화 및 임금인상 투쟁>
- 구로동맹파업>
-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점거농성사건>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 KBS TV 시청료 거부운동>
- 개헌서명운동>
- 박영진 분신 사건>
- 김세진ㆍ이재호 분신 사건>
- 5ㆍ3인천항쟁>
- 서울노동운동연합 사건>
- 부천서 성고문 사건>
-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 결성식 및 건국대 점거농성 사건>
- 7ㆍ8월 노동자 대투쟁>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결성>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결성>
- 대우조선 노조결성과 이석규 장례투쟁>
-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
- 부정선거 항의 구로구청 점거농성 사건>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결성>
- 강원 탄광노동자 성완희 분신사건>
-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결성>
- 나라사랑청년회>
- 전국노점상연합회 결성>
- 전국농민단체협의회 결성>
- 여의도 농민시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 이철규 의문사 사건>
- 전국빈민연합 결성>
- 해고노동자블랙리스트철폐투쟁>
- 대우어패럴노조탄압사건>
- 민주화추진위원회(깃발사건)>
- 민중교육지사건>
- 삼민투사건 >
- 교육민주화선언 >
- 제헌의회그룹사건>
- 말지(보도지침)사건>
- 서울남부지역노동자동맹(남노련)사건>
- 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결성>
-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결성>
- 서울지하철노조파업>
- 경동산업노조탄압과 노동자 집단분신>
-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인노협) 총파업투쟁>
- 1980년대 통일운동>
-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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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 분신 사건
1986년은 노사분규에 참여한 노동자가 급증한 시기였다. 노사분규의 원인은 임금인상과 체불임금이 주종을 이루었으며 1월부터 4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1986년 상반기 노동운동은 서울 구로지역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인금인상투쟁의 열기가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1986년 3월 17일, 서울 구로구 소재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이 인금인상투쟁 중 경찰과 대치 끝에 회사 옥상에서 분신했다. 450여 명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신흥정밀은 초임이 3080원의 저임금에다 기본근무시간이 9시간으로 강제되어 있고, 연차 월차 생리수당은 지급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진 회사였다. 이에 노동자들은 ①초임 4200원으로 인상 ②하루 기본근무시간 8시간 정상화, ③강제잔업과 철야 특근 철폐, ④부당해고 철회 등을 요구했다.
신흥정밀 노동자들은 1986년 3월 7일부터 지속적인 유인물 작업을 통해 노동상황을 알려나갔다. 3월 17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전 종업원과 함께 투쟁을 전개할 계획이었으나 회사 측이 미리 알고 점시시간을 일방적으로 연기해 방해함에 따라 박영진을 포함한 몇몇 노동자들은 식당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요구사항을 외쳤다. 즉각 경찰이 투입되고 옥상까지 밀려올라가 경찰과 대치하게 된 박영진은 온몸에 석유를 붓고 성명서에 불을 붙인 후 경찰이 물러날 것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방치한 채 동료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어내리는데 급급했다. 경찰들은 박영진이 쓰러질 때까지 10여 분을 기다렸다가 담요로 덮고 동료들을 경찰서로 연행한지 20분이 지난 다음인 3시경에야 강남성심병원으로 옮겼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 몸에 화상을 입었으나 “전태일 선배가 못다 한 일을 내가 하겠다. 1천만 노동자의 권리를 찾겠다.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 등의 말을 남기고 3월 18일 새벽에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측이 박영진의 부친을 기만하고 회유를 시도했다. 박영진의 부친을 찾아온 회사측 관리자는 10만원을 건네주면서 박영진의 퇴사를 종용하면서 퇴사처리 후 계속적인 치료를 해주겠다고 했다. 박영진의 부친이 이들의 요구를 거부하자 갖은 기만과 회유로 타협을 시도했다. 강남성심병원에는 사복경찰과 전경이 배치되었다. 경찰은 시신을 지키고 있던 노동자와 박영진의 운명을 지켜보러 온 문익환 목사 등 민주인사들을 강제로 귀가시키고 시신을 탈취하여 그들 마음대로 벽제화장터에서 화장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박영진은 1984년 9월 동일제강에 입사하여 1985년 3월 노조결성 후 노조사무장에 선출되어 민주노조건설에 핵심적 역할을 하다 강제해고 당하고 1985년 10월 신흥정밀에 입사했다.
주요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민주화운동관련 사건·단체 사전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보고서』 이원보 저 『한국노동운동사5』
사료소개
‘박영진’ 조건으로 총 109 건이 검색되었다. <고 박영진 열사가 여성 동료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등록번호 : 211071) 박영진이 분신하기 이틀전 자신의 생각과 심경을 담담하게 쓴 육필 편지, 이 편지를 쓸 당시의 박영진 열사 주변 정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자료, <박영진 동지의 약력과 투쟁경력> (등록번호 : 095213) 박영진의 성장과정, 의식화과정, 투쟁과정이 일지형식으로 쓰여진 자료, <경찰의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출입구를 몸으로 막는 사람들> (등록번호 : 700928) 박용수 사진, <노동투사 박영진 동지 장례투쟁 보고서> (등록번호 : 095104), <박영진 열사 장례식 팜플렛> (등록번호 : 326761) 박영진의 약력과 투쟁경력, 분신 이후 노동자와 민주인사의 투쟁 경과, 편지 내용 등 소개, <박영진의 장례식을 몰래 지켜보던 양주경찰서 형사들에게 노동자들이 달려들자 이를 말리는 문익환 목사와 이소선 여사> (등록번호 : 700981) 등은 시신을 둘러싼 긴박하고 암울했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