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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결성

1990년 3당합당으로 거대여당 민자당이 탄생하고 보수대연합 기도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런 흐름에 대해 재야단체와 대중운동조직들은 보수대연합이 핵심적으로 민중진영을 비롯한 모든 민주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민주세력이 결집한 대중투쟁전선의 구축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2월 1일부터 21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민자당 장기집권음모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 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대책회의는 2월 24일과 25일 전국적으로 ‘반민주 3당야합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 국민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모든 민주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민족민주세력의 공동투쟁기구를 구성할 것을 합의하였다. 그 결실로 1990년 4월 21일 민중운동세력을 포괄하는 광범한 대중정치투쟁을 전개해 나가기 위한 한시적인 상설 공동투쟁체인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 국민연합’(국민연합)이 전민련, 전노협, 전농, 전빈련, 전교조, 전대협 등 10여개 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결성되었다.

국민연합은 스스로의 위상을 ‘당면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를 위한 한시적 공동투쟁체’로 설정하고, 구성원칙을 전국적으로 조직된 기층 민중의 대중운동체를 중심으로 여성, 언론, 종교, 법조 등 단체와 시민 및 개별 인사를 광범하게 참여시키는 것으로 확정했다. 결성 이후 국민연합은 물가, 토지,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캠페인, KBS, 현대중공업 노동자 지원투쟁과 1991년 5월 9일 ‘민자당 해체 노태우 정권 퇴진촉구 국민궐기대회’ 등을 수행한 데 이어, 5월 20일에는 민중운동탄압 분쇄, 재벌위주 경제정책 근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10대 당면 투쟁강령을 발표하는 등 운동을 주도해나갔다. 그러나 경찰의 폭력적인 탄압과 함께 전민련 김근태 집행위원장이 구속되고 국민연합 이수호 집행위원장이 수배되는 등 간부들에 대한 정권의 공격으로 국민연합의 활동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에 운동의 위축을 막고 새롭게 힘찬 대중정치투쟁의 공세를 펴 나가기 위해 국민연합은 야당을 포함한 ‘비상시국회의’를 제안하였다. 비상시국회의는 국민연합, 평민당, 민주당, 민중당, 통추회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국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 민족자주통일 불교운동협의회, 12개 업종노조회의 등 모두 5개의 정당과 사회단체로 구성된 반민자당 민주연합투쟁전선으로서의 성격을 지녔다.

한편 운동진영은 국민연합과 전민련 그리고 비상시국회의 등으로 분산되어 있는 전선체운동의 통합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6월 6일 국민연합 대표자회의에서 상설연합 건설을 위한 논의를 추진하기로 결정한 후, 6월 24일 전노협, 전교조, 전청협 등의 ‘대중조직 일선대표자회의’에서 상설연합 결성 결의를 하고, 7월 24일 국민연합 대표자회의에서 10개 부문조직과 13개 지역조직으로 ‘상설연합 건설추진위’가 구성되었다. 이어 10월 22일에는 준비위가 결성되었고, 12월 1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이 발족함으로써 민족민주운동진영은 단일한 전선체로 통합을 이루었다. 1991년 12월 1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창립 대의원대회가 연세대에서 열렸다. 전국연합은 이날 오후 5시 30분 연세대 강당에서 전농, 전대협, 광주전남연합 등 21개 부문단체와 지역연합 소속 대의원 239명과 4,000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대의원 대회를 갖고 고광섭 전빈련의장, 지선 통불련의장, 권종대 전농의장, 한상렬 전민련 공동의장 등 4명을 공동의장으로 선출했다. 대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과 전국연합의 대의원 500여 명 등 1,000여 명은 건국대에 모였다가, 그중 800여 명이 저녁 7시 40분쯤 퇴계로 대한극장 주변으로 옮겨가 1시간여 동안 화염병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날 전국연합 결성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연세대에 들어가려던 대학생 등 430여 명을 연행했다.

출범 이후 전국연합은 자주통일투쟁, 민권민생투쟁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전국연합이 진행한 자주통일운동을 보면, 8.15를 전후로 한 남북한과 해외동포가 함께 하는 공동행사, 북한동포돕기운동, 북미 핵합의와 그 이행을 둘러싸고 조성된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영구적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평화협정체결운동, 주한미군의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을 위한 운동,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 등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민권민생투쟁과 관련해서는 전노협에 대한 정권의 파상적 공세에 대한 대응, 주거권 실현을 위한 철거민들과 도시빈민들의 생존권 투쟁에 대한 지지지원, 쌀과 기초농산물 수입개방저지 투쟁, 5.18학살자처벌을 위한 활동, 전교조 해직교사 복직과 전교조 합법화 및 교육대개혁운동 등을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과 연대해 전개하였다.

주요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서중석 저,『한국현대사 60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3』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편, 『연대와 전진』합본호(창간-7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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