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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점상연합회 결성

노점상들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비롯한 국제행사 때마다 ‘환경미화’, ‘거리질서확립’이라는 미명 아래 폭력적 강제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노점상의 생계를 위협하는 강제단속은 1983년 IPU(국제의회연맹) 총회 개최당시 한 노점상의 죽음을 불러왔다.

이로 인해 노점상 1500여 명이 시청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는데 이것은 최초의 노점상 단결투쟁으로 노점상 조직운동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1986년 아시안게임을 맞이하여 노점상들을 강력하게 단속했다. 노점상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86년 12월 29일 ‘도시노점상복지회’(도노련)를 결성했고, 이 단체는 1987년 10월 19일 ‘도시노점상연합회’로 개칭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점으로 정권이 다시 노점상을 탄압하자 그 간의 투쟁조직을 강화시킨 도시노점상연합회는 대중적 노점상탄압반대투쟁을 준비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면 단속 예고가 내려지자 1988년 ‘6·13생존권수호결의대회’를 개최했고, 이를 통해 전국조직 결성을 모색했다. 도노련은 사업방식을 대중적으로 전환하고 조직을 부산, 광주, 원주, 제주 등 전국단위로 확대해 1988년 10월에 ‘전국노점상연합회’(전노련)를 결성했다.

전국노점상연합회는 노점상의 생존권쟁취, 도시빈민·노점상 발생원인 및 잘못된 사회경제구조 개혁과 사회안전망 확보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어 노점단속에 대한 대응과 노점상간의 상호부조, 손수레 규격화, 자율질서사업, 지역공동체사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했다. 정부는 1989년 4월 노점상 전면단속 조치를 내렸다. 이에 전노련은 단속저지투쟁과 ‘백만노점상생존권완전쟁취결의대회’ 등을 개최하고 명동성당에서 철야농성을 벌이면서 7·8월 노점상 투쟁의 서장을 열었다. 이후 1990년 노점상자립법 제정 촉구활동과 1992년 도시빈민 생존권 결의대회 개최, 3·24총선에 후보 출마, 노점상자립합법화공동추진위원회 구성과 1993년 노점상자립합법화청원운동 등을 꾸준히 전개해갔다. 1989년 11월 11일 전국빈민연합 과 1992년 7월 전국도시빈민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주요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민주화운동관련 사건·단체 사전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보고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전국노점상연합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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