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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1987년 여름에 있었던 노동자 대투쟁 (상세는‘ 7·8월 노동자대투쟁’ 참고)의 열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12월 15일, ‘맥스테크 노동조합 투쟁 승리 제1차 보고대회’에 참석한 서울지하철 등 15개 사업장 노조 위원장들이 서울지역 차원의 연대조직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어 1988년 1월 9일부터 이틀간에 걸쳐 경기도 양주군 마석 소재 새터수련장에서 23개 사업장 노조 위원장과 노조 간부 93명이 모여 ‘서울지역 민주노조 연대조직 건설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 차원의 연대조직 건설을 재결의하였다. 그리고 1988년 1월 22일에 있었던 「맥스테크사 위장폐업 철회 촉구 1차 성명서」 발표에 22개 사업장이 서명하는 등 연대활동도 한층 활발해졌다. 1988년 1월 25일, 43개 사업장 대표자와 간부 123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지역 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20개의 노조가 참여하였다. 이를 토대로 1988년 5월 29일 여의도 여성백인회관에서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초대의장 배일도 지하철공사 위원장. 부의장 단병호 동아건설 위원장 등 7인)가 결성되었다.

서노협은 90개 노조로 출발하여, 1988년 12월 6일에는 98개 노조 33,781명, 1989년 6월에는 가입 노조 105개에 조합원 36,839명으로 확대되었다. 서노협의 이러한 조직 확대는 서노협의 단위 노동조합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사업과,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 자본과 정권에 대한 강력한 연대투쟁의 성과였다. 서노협은 결성 시기부터 노동운동 탄압에 대하여 공동투쟁으로 맞섰다. 맥스테크사의 위장폐업 철회투쟁, 서울지하철노조 탄압 저지투쟁, 동아건설 창동지부 지원투쟁, 모토로라노조 탄압 저지투쟁 등이 그 주요한 사례이다.

서노협은 1988년 하반기부터 노동법 개정투쟁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1월 13일 노동자대회 개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등 전국적 중앙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노동법 개정투쟁을 비롯한 투쟁의 중심부 역할을 수행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와 ‘전국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를 결성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후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상세 별도 항목 참고) 건설의 중요한 토대를 구축했다. 한편 1989년 들어 노태우 정권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탄압의 일환으로 핵심 노동운동지도자들에 대한 검거에 몰두했는데, 4월 16일 단병호 위원장을 3월 19일의 지하철 파업과 관련하여 구속하였다. 이에 서노협 등은 4월 20일 서울지역 총파업을 전개하여 47개 노조가 투쟁에 참여하고, 같은 날 저녁에는 구로공단에서 집회를 열어 총 60개 노조 3,500여 명이 정권의 노조탄압에 대해 투쟁했다. 이 투쟁은 서노협 소속 노동자들에게 투쟁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을 심어주어 5월 1일 메이데이까지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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