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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6월항쟁 이후 사회 전부문의 민주화 요구가 분출한 가운데, 교육 민주화를 실현하려는 전국의 교사들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문교부의 대회참가자에 대한 징계 위협과 경찰에 대한 원천봉쇄 요청에도 불구하고 1989년 5월 14일 전국 시도 10개 지역에서 15,000여 명의 발기인으로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였다.

준비 작업을 거쳐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준비위원회’ 주최로 한양대에서 결성대회를 치루기로 하였다. 하지만 발기인대회 이후 정부는 모든 기관을 총동원하여 갖은 협박을 다하면서 전교조의 결성을 막아보려고 징계와 구속, 사전영장 발부 등을 가했으며 경찰은 5천여 명의 경찰을 풀어서 결성대회를 원천봉쇄하였다. 이에 이날 오후 연세대로 장소를 옮겨 결성대회를 강행하였는데, 윤영규 교원노조준비위원장(전남체고)과 이부영 부위원장(서울 송곡여고), 이수호 사무처장(서울 신일고) 등 집행 간부와 8개 시·도지부 준비위원장 등 교사 200여 명이 참가하였다. 결성대회는 대회사, 임시의장 선출, 위원장 윤영규 선출, 노조 결성선언문 낭독 등의 순서로 20여 분만에 끝났다. 이들은 결성선언문에서 “오늘 우리의 교육이 수십 년 군사독재를 청산하여 민주화를 이루고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앞당길 동량을 키우는 민족사적 성업을 수행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교직원은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유린한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강요로 인하여 집권세력의 선전대로 전락”했다며 학생들을 “공동체적인 삶을 실천하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가르치겠다고 선언했다.

대회를 마친 뒤 윤 노조위원장 등 집행 간부와 직위해제된 노조원 등 26명은 이날 오후 8시부터 서울 마포구 민주당사에 들어가 교원노조 탄압 중지와 연행교사 석방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전교조의 결성은 4·19 직후의 교원노조 건설운동이 군사독재정권의 혹독한 탄압으로 좌절된 때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교육민주화운동의 새로운 형태로 다시 등장한 것이기에 1989년을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의 마당이 열리는 ‘참교육 원년’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교조가 결성되기 까지는 1978년 6월의 『우리의 교육 지표 』사건, 1985년의 『민중교육』지 사건과 전교조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가 1987년 8월부터 1989년 2월까지 행한 교육민주화운동 등 교사들의 교육민주화를 위한 면면한 투쟁이 있었다. 전교조는 7월 14일까지 지부 15개, 지회 115개, 분회 565개를 결성하고, 467명의 교수까지 참여해 일단 대중적 조직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정부로부터 초강경 탄압을 받아 피해가 많았다. 전교조 결성 전후 약 6개월간 1,500여 명의 교사가 강제로 교단에서 내몰렸다. 이후 전교조는 합법화 투쟁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98년 10월 30일 노사정위원회는 제10차 본회의에서 ‘교원노조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합의하였다. 1999년 7월부터 교원노조의 활동이 전면 합법화되었다.

주요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서중석 저,『한국현대사 60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편, 『한국교육운동백서 1978-199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공선옥 저,『윤영규』 (시대의 불꽃 18)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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