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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노동자블랙리스트철폐투쟁

1983년 말부터 1985년까지 전두환 정권은 자신들의 정권획득 과정에서 빚어진 합법성과 도덕성에 대한 시비를 무마하고 반정부인사들을 체제 내로 흡수하여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노동자들은 9.7%의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의 지속적인 임금억제 정책에 대해 노동자들은 해고자 복직투쟁과 블랙리스트 철폐투쟁으로 맞섰다. 1983년 말부터 전두환 정권은 ‘노동현장으로부터 불순분자를 영원히 추방한다’는 목표 아래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블랙리스트는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노동부·국가정보기관이 공동 작성한 것으로 125개 사업장의 해고자 681명, 복직자 60명, 재취업자 57명에 관한 일목요연한 신상명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사람들은 1980년 신군부의 노동계 정화 조치로 인해 해직된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 활동가들과, 역시 1980년대 초반 운동 경력 때문에 대학에서 제적된 후 노동 현장에 취업한 후 신분이 노출된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로, 전두환 정권은 이들의 재취업으로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조직화되는 것을 원천봉쇄하고자 했다. 블랙리스트는 관련 노동자들의 취업할 권리와 생존권을 박탈하고 노동운동 자체를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의 권리와 직업선택의 자유를 유린하는 것이며 근로기준법에서도 금지하고 있었다.

블랙리스트에 의한 해고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는데, 1983년 12월 6일 블랙리스트가 발견되자 태창메리야스, 태평특수섬유 해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블랙리스트 철폐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들 해고 노동자들은 사복경찰 등의 비인간적인 폭력행사에도 불구하고 진정·해고·무효확인소송 등의 준법투쟁과 전단 배포, 대중 집회 등을 열며 운동을 전개해나갔다. 1984년 12월 15일 가톨릭노동청년회(JOC)의 블랙리스트 철폐를 요구하는 단식농성에 이어, 1월 19일에는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 철폐위원회’(위원장 문익환 목사)가 결성되어 블랙리스트 문제를 정치사회 문제화시켰다. 3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자 노동부장관은 답변에서 “블랙리스트란 인천지역 일부 근로자들이 법질서를 위반한 과격한 활동으로 해고된 뒤 다른 사업장에서 이를 기피하는 현상이 생겼는데 당사자들이 이를 오해하여 자신들의 이름으로 작성되어 배포되었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전면 부인했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그 이후의 정권 때까지도 이어졌다 (상세는 주요 첨부사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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