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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결성

1987년에 들어 직선제 개헌을 둘러싼 민주화운동이 고양되면서 교수들의 학교별 시국선언문들이 1986년 6월 2일의 교수연합시국선언에 이어 다시 발표되었다. 그 과정에서 학원 및 사회 민주화를 위해 교수들의 조직화된 협의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보다 널리 확산·정착되었다. 이러한 인식을 배경으로 하여 복직 교수·소장 교수·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조직화의 시도가 이루어져 왔으며, 그것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창립으로 수렴되었다. 본래 6월 26일 창립대회를 치르려고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연기되어 7월 21일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42개 대학에서 664명이 참가한 민교협은 이날 채택한 규약에서 “대학과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설립 목적을 밝혔다. 회의 참석자들은 '사회와 학원 민주화를 촉구하며'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통해 “변화를 위한 진통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 현실은 사회 각 집단에게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변화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고, 이러한 요청은 우리 교수들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다”며, “이 시대 한국의 대학에 몸담고 있는 우리 교수들은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이 사회의 민주화와 표리관계에 있음을 직시하고, 이 양자의 동시병행적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공동노력이 절실”함을 확인하면서, '현정권의 민주화에 대하여' 등 7개 항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민교협은 간사 체제로 운영되다가 1988년 8월 20일 의장체제로 전환되어 운영되었고, 초대 의장에는 김상기, 송기숙, 김진균 교수가 추대되었다. 민교협의 주요한 활동은 크게 교육민주화운동과 사회민주화운동으로 나뉜다. 민교협의 첫 번째 사업은 교육관계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하는 일이었다. 1987년 11월 5일에는 교육관계법의 민주적 개정을 촉구하였으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을 지지하고 여기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사회민주화운동 중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민교협은 1988년 서관모 교수의 논문 관련 검찰 소환, 조국 교수의 ‘사노맹 사건’ 관련 직위 해제 등에 대해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대응하였다.

주요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서중석 저,『한국현대사 60년』 김정남 저,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편, 『민교협 20년사』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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