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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교육지사건

전두환 정권은 1983년 말 이래의 유화 국면에서 사회 각계각층의 민주화 요구가 계속 터져나오자 정부 및 사회에 대한 어떤 종류의 비판에 대해서도 ‘좌경용공’의 딱지를 붙여 탄압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82년 1월 창립된 ‘한국YMCA중등교육자협의회’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교육 현장의 문제의식을 모아 비정기 무크지 󰡔민중교육󰡕지를 1985년 5월 20일에 창간하였다. 󰡔민중교육󰡕은 일선 교사들의 시각에서 교육문제 해결의 방안 제시를 하고자 창간되었다.

󰡔민중교육󰡕은 창간되자마자 당국의 주의를 받았다. 6월 25일 서울 여의도고 교장 김재규는 서울시교위 학무국장에게 󰡔민중교육󰡕지를 전달하였고, 학무국장은 그 내용에 대한 분석을 시교위 안기부 조정관에게 의뢰하였다. 이후 󰡔민중교육󰡕은 급속히 사건화 되어 7월 16일 출판기념회는 종로경찰서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었다. 7월 18일에는 시교위가 관련 교사들을 소환했으며, 7월 22일에는 유상덕, 김진경 교사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후 문교부와 언론의 다양한 이데올로기 공세가 펼쳐졌다. 8월 8일부터 검찰의 형사처벌 방침이 보도되기 시작했고, 10일 유상덕·고광헌 교사 등 6명이 자진출두했으며, 8월 17일에는 김진경·윤재철 교사와 실천문학사의 송기원 주간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당시 제도언론이었던 KBS는 8월 6일 특별 보도 프로그램 “민중교육, 당신의 자녀들을 노린다”를 방영하여 교사들을 좌경용공세력으로 몰아붙였다. 1986년 2월 중순 서울지법은 김진경 논문 「해방 후 지배집단의 성격과 학교교육」이 “반국가단체인 북한 공산집단의 선전 선동 활동에 동조함으로써 이를 이롭게 하였다”라고 하여 1년 6월을 선고하였고, 윤재철과 송기원은 1년의 실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송기원 주간의 구속 이후 실천문학사는 폐간조치를 당하였다. 그러나 1986년 5월 10일 한국YMCA중등교육자협의회를 중심으로 450여 명의 교사들이 서울 YMCA에 모여 ‘교사의 날’ 집회를 열고 ‘교육민주화선언’(상세는 별도 항목 참고)을 발표했고, 부산 광주 춘천에서도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누적된 교육의 제반 문제를 부각시켜 교육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을 새로운 교육주체들에게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즉각 참여 교사들에 대한 징계방침을 밝혔으나 각계의 강력한 항의로 주동자 다섯 명을 경징계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한국YMCA중등교육자협의회가 각 지역별로 ‘민주교육실천대회’를 조직해 가자, 전두환 정권은 안기부를 중심으로 관계기관대책회의를 가동하여 교사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고, 7월 15일에는 교사운동의 핵심이었던 유상덕을 서울대 ‘이병설교수간첩단사건’으로 엮어 전격구속했다. 하지만 그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민주화운동은 계속되어 1986년 5월 15일 민주교육실천협의회(공동대표 성내운 문병란 이오덕)와 1987년 9월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의 결성을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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