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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민주화선언

1985년의 󰡔민중교육󰡕지 사건(상세는 별항 참조)에 따른 파문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민주화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1986년 2월부터 불어 닥친 전 사회적인 개헌서명운동과 학계, 종교계의 민주화 요구 시국성명 발표는 교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1982년에 설립된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교사들은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군부독재 정권하의 정치화된 제도교육에 대한 반감과 비판을 조직적으로 표출하게 되었다. 1986년 5월 10일, 사전 정보를 입수한 교육 관료들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450여 명의 교사들이 서울 YMCA에 모여 「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는 당시 ‘극도로 통제된 관료기구의 말단’으로 전락한 교사들의 현실에 대한 반성과, 평교사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당시 유일 합법 교원단체인 대한교육연합회(약칭 대한교련)에 대한 비판, ‘진리를 탐구하고 심신이 건전한 인간미 넘치는 공동체의 성원으로 자라야 할 학생들이 비장한 점수 경쟁과 물질만능의 상업주의 문화의 홍수에 시달리며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할 기회를 갖지 못한’ 현실을 직시하고 민주교육을 향한 교사·학생·학부모를 교육의 새로운 주체로 선언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선언문 낭독 후 총 362명이 지지 서명에 참가하였다. 이날 선언문 행사는 YMCA중등교사회를 중심으로 부산, 광주, 춘천 등에서 전국적으로 동시에 진행되었다. 주요 신문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이 선언은 누적된 교육문제를 부각시켜 교육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을 새로운 교육주체들에게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민주화선언」 발표 5일째인 5월 15일 참여 교사에 대한 정부의 징계 방침이 떨어졌다. 문교부 장관은 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의 집단행동은 교육에 악영향을 미치는 행위이므로 적절한 대응조치가 강구될 것이며, 인사권과 징계권이 있는 해당 시·도교육위원회에서 명단 파악 등 조사가 끝나는 대로 적절히 처리할 것이라 밝혔다. 이에 신일고에서는 정부의 징계 방침에 대한 항의의 일환으로 교사 55명이 대책위를 구성하였고, 재학생 400여 명은 항의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외에 15일 오후 방송통신대 교수들의 지지 성명, 민주교육실천협의회의 지지 호소 등은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교육민주화선언」 사건은 주도 교사 5인에 대한 경징계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가 각 지역별로 ‘민주교육실천대회’를 조직해 들어가자 전두환 정부는 안기부를 중심으로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여는 등 감시와 탈퇴 압박을 가했다. 7월 15일 안기부는 교사운동의 핵심인 유상덕을 연행하여 서울대 이병설교수간첩단사건으로 엮어 구속했고, 9월엔 윤영규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회장 등을 구속하고 서울지역 교사 6명을 고문하여 이른바 ‘민족민주교육쟁취투쟁위원회사건’을 조작했다. 그리고 교사 100여 명을 파면· 해임· 정직· 감봉 등 각종 징계를 동원하여 탄압했다. 그러나 이들 해직교사들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1986년 5월 민주교육실천협의회 등을 결성하는 등 교육민주화운동을 이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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