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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인노협) 총파업투쟁

1988년 5월 18일 민주노조 설립을 위한 집회를 하던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인노협) 준비위원회의 황재철 의장과 50여 명의 노동자들이 연행되자 인천지역 노동자들은 약 20여 일에 걸쳐 가두시위, 농성 등의 석방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황재철 의장을 제외한 조합원들이 석방되었고, 그들은 투쟁 열기를 모아 6월 18일 인노협을 결성하였다.

1989년 11월 11일 인노협의 최동식 의장이 아침 7시경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열리는 동국대에 들어가려다가 70여 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연행되었다가 구속되었다.그가 구속되자 인천지역의 노동자들은 이에 항의하며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인노협은 비상위원회를 즉각 개최하여 최동식 의장 석방을 요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11월 16일 인천지역 총파업과 11월 17일 전국 동시 총회 투쟁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11월 15일 저녁 인노협 소속 조합원들은 “의장 구출” 을 외치며 인천의 서운동, 작전동, 효성동 일대에서 격렬한 가두투쟁을 전개하였다. 20여 명의 위원장들은 철야농성에 돌입하며 총파업을 준비하였다. 11월 16일 인노협 소속 45개 노조 5,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총파업투쟁에 돌입하였으며, 전경과 백골단 1,500여 명이 투입되어 130여 명의 노동자들을 연행하였다. 하지만 1,200여 명의 노동자들은 다우정밀 앞에서 끝까지 투쟁을 전개하였다. 한편 인노협과 인천지역 민주노조운동을 파괴하기 위한 프락치 공작이 대흥기계 전 파업대장 제4지구 대장 변태옥의 양심선언으로 폭로되었다.

이에 따라 대흥기계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21일 부평과 부천의 600여 명의 전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총회를 열어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이어 22일에는 부평경찰서의 적극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평민당을 찾아가, 변태옥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 이를 근거로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인노협은 규탄 성명과 비상운영위원회를 열어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 철야농성 투쟁을 전개하였다. 11월 30일에는 2명의 국회의원이 인천시청 시장실에서 관련자를 소환하여 조사활동을 벌였다. 회사와 부평경찰서, 인천 지방노동청은 물론이고 치안본부 대공요원까지 연루된 ‘변태옥 프락치 사건’은 인천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인노협) 총파업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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