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 분신
- 청계피복노동조합결성투쟁
-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민주수호운동
- 광주대단지 사건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결성
- 김대중 납치사건
-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긴급조치위반사건
-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 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발족
- 오글 목사, 시노트 신부 강제추방사건
- 조선일보ㆍ동아일보 기자 해직 사태
- 서울대생김상진할복자살
- 장준하 의문사 사건
- 3ㆍ1민주구국선언 사건(명동 사건)
- 구속자가족협의회(구가협)
- 「민주구국헌장」 사건
- 동일방직사건
- 함평고구마사건
- YH사건
- 민주청년인권협의회
- 「우리의 교육지표」사건
-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
- 안동교구가톨릭농민회사건(오원춘사건)
- YWCA 위장결혼식 사건
- 서울대생내란예비음모사건
- 자유실천문인협의회문학인 101선언
- 인선사(삼고사) 유령노조사건
- 병역문제대책위원회사건
-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탄압사건
- 카터 방한 반대시위
- 1970년대 필화사건
- 1970년대 언론탄압
민주청년인권협의회
민주청년인권협의회는 1975년 2월 15일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148명이 석방된 이후 이들이 긴급조치 9호로 구속·제적된 학생들과 더불어 조직한 반유신 민주화운동 청년조직이다. 이는 청년운동 최초의 공개조직으로 1978년 5월 12일 기독교회관에서 창립선언을 발표하였다. 그 창립 취지는 “우의를 돈독히 하고 부당한 정치적 압력에 대하여 자위책을 마련키 위하여, 나아가 현재의 상황을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젊은 세대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가입대상은 “학원에 재(在)하던 자로서 민주 활동으로 인하여 구속 및 제적된 자와 민주·민권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청년층” 이었다.
민주청년인권협의회는 창립직후부터 유신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5월 25일 정문화, 박계동, 김학민, 문국주, 배경순, 장만철 등 운영위원 6명 전원이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어 협회 탈퇴를 종용받으며 협박, 공갈, 폭행을 당했다. 이후 ‘민청협’회원들은 주요 감시·연행의 대상이 되었다. 1978년 11월에 조성우를 회장으로 새 집행부가 구성되어 ‘민청협회보’를 발행하는 등 운동의 폭을 넓혔으며 “민중의 기본 권리와 자유가 정권 안보를 위하여 철저하게 탄압당하고 있는 현실을 통렬히 비판했다. 청년 학생들에 대한 유신정권의 탄압이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민청협은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의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갔다.
정문화, 조성우, 양관수, 이우회, 이해찬 등이 회장직을 맡아온 ‘민청협’은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단지 인권문제만이 아닌 민주화 문제와 조직의 확대를 겨냥하면서 명칭도 민주청년협의회로 바꾸었다. 그동안 민주 청년의 표면에 부각된 집결체로서 다양한 민주화 운동을 펴온 민주청년협의회는 1979년 11월 24일 ‘YWCA위장결혼식사건’에 관여하여 많은 구속자를 냈다.
주요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편,『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민주화운동관련 사건· 단체 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1970년대)보고서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유신과 반유신』
사료소개
민주청년인권협의회 관련 사료는 약 60여 건이 있다. <창립선언>(등록번호 : 521069), <민주청년인권협의회 고문단의 중앙정보부의 운영위원 연행에 대한 규탄 성명서>(등록번호 : 578093), 한국인권운동협의회의 <민주청년인권협의회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만행에 대한 성명>(등록번호 : 578090), <민청협회보>(등록번호 : 085118-제2호, 083404-제3호, 183056-제4호), 그 외 통일문제 병역문제, 카터미국대통령 방한반대 성명 등의 사료가 있다.
- 1960년대
- 1970년대
- 전태일 분신>
- 청계피복노동조합결성투쟁>
-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민주수호운동>
- 광주대단지 사건>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결성>
- 김대중 납치사건>
-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긴급조치위반사건>
-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 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발족>
- 오글 목사, 시노트 신부 강제추방사건>
- 조선일보ㆍ동아일보 기자 해직 사태>
- 서울대생김상진할복자살>
- 장준하 의문사 사건>
- 3ㆍ1민주구국선언 사건(명동 사건)>
- 구속자가족협의회(구가협)>
- 「민주구국헌장」 사건>
- 동일방직사건>
- 함평고구마사건>
- YH사건>
- 민주청년인권협의회>
- 「우리의 교육지표」사건>
-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
- 안동교구가톨릭농민회사건(오원춘사건)>
- YWCA 위장결혼식 사건>
- 서울대생내란예비음모사건>
- 자유실천문인협의회문학인 101선언>
- 인선사(삼고사) 유령노조사건 >
- 병역문제대책위원회사건>
-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탄압사건>
- 카터 방한 반대시위>
- 1970년대 필화사건>
- 1970년대 언론탄압>
- 1980년대
- 사북항쟁 (사북광산노동자대투쟁)>
-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 원풍모방 노조사수투쟁>
- 전국민주학생연맹·전국민주노동자연맹 사건(학림사건)>
- 콘트롤데이타 노동쟁의>
-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 오송회 사건>
-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결성>
-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결성>
- 민중민주운동협의회>
- 목동 철거민 투쟁>
-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결성>
- 대우자동차 노조민주화 및 임금인상 투쟁>
- 구로동맹파업>
-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점거농성사건>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 KBS TV 시청료 거부운동>
- 개헌서명운동>
- 박영진 분신 사건>
- 김세진ㆍ이재호 분신 사건>
- 5ㆍ3인천항쟁>
- 서울노동운동연합 사건>
- 부천서 성고문 사건>
-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 결성식 및 건국대 점거농성 사건>
- 7ㆍ8월 노동자 대투쟁>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결성>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결성>
- 대우조선 노조결성과 이석규 장례투쟁>
-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
- 부정선거 항의 구로구청 점거농성 사건>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결성>
- 강원 탄광노동자 성완희 분신사건>
-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결성>
- 나라사랑청년회>
- 전국노점상연합회 결성>
- 전국농민단체협의회 결성>
- 여의도 농민시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 이철규 의문사 사건>
- 전국빈민연합 결성>
- 해고노동자블랙리스트철폐투쟁>
- 대우어패럴노조탄압사건>
- 민주화추진위원회(깃발사건)>
- 민중교육지사건>
- 삼민투사건 >
- 교육민주화선언 >
- 제헌의회그룹사건>
- 말지(보도지침)사건>
- 서울남부지역노동자동맹(남노련)사건>
- 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결성>
-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결성>
- 서울지하철노조파업>
- 경동산업노조탄압과 노동자 집단분신>
-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인노협) 총파업투쟁>
- 1980년대 통일운동>
- 1990년대
관련키워드
민주청년인권협의회
민주청년인권협의회는 1975년 2월 15일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148명이 석방된 이후 이들이 긴급조치 9호로 구속·제적된 학생들과 더불어 조직한 반유신 민주화운동 청년조직이다. 이는 청년운동 최초의 공개조직으로 1978년 5월 12일 기독교회관에서 창립선언을 발표하였다. 그 창립 취지는 “우의를 돈독히 하고 부당한 정치적 압력에 대하여 자위책을 마련키 위하여, 나아가 현재의 상황을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젊은 세대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가입대상은 “학원에 재(在)하던 자로서 민주 활동으로 인하여 구속 및 제적된 자와 민주·민권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청년층” 이었다.
민주청년인권협의회는 창립직후부터 유신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5월 25일 정문화, 박계동, 김학민, 문국주, 배경순, 장만철 등 운영위원 6명 전원이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어 협회 탈퇴를 종용받으며 협박, 공갈, 폭행을 당했다. 이후 ‘민청협’회원들은 주요 감시·연행의 대상이 되었다. 1978년 11월에 조성우를 회장으로 새 집행부가 구성되어 ‘민청협회보’를 발행하는 등 운동의 폭을 넓혔으며 “민중의 기본 권리와 자유가 정권 안보를 위하여 철저하게 탄압당하고 있는 현실을 통렬히 비판했다. 청년 학생들에 대한 유신정권의 탄압이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민청협은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의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갔다.
정문화, 조성우, 양관수, 이우회, 이해찬 등이 회장직을 맡아온 ‘민청협’은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단지 인권문제만이 아닌 민주화 문제와 조직의 확대를 겨냥하면서 명칭도 민주청년협의회로 바꾸었다. 그동안 민주 청년의 표면에 부각된 집결체로서 다양한 민주화 운동을 펴온 민주청년협의회는 1979년 11월 24일 ‘YWCA위장결혼식사건’에 관여하여 많은 구속자를 냈다.
주요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편,『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민주화운동관련 사건· 단체 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1970년대)보고서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유신과 반유신』
사료소개
민주청년인권협의회 관련 사료는 약 60여 건이 있다. <창립선언>(등록번호 : 521069), <민주청년인권협의회 고문단의 중앙정보부의 운영위원 연행에 대한 규탄 성명서>(등록번호 : 578093), 한국인권운동협의회의 <민주청년인권협의회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만행에 대한 성명>(등록번호 : 578090), <민청협회보>(등록번호 : 085118-제2호, 083404-제3호, 183056-제4호), 그 외 통일문제 병역문제, 카터미국대통령 방한반대 성명 등의 사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