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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청년인권협의회

민주청년인권협의회는 1975년 2월 15일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148명이 석방된 이후 이들이 긴급조치 9호로 구속·제적된 학생들과 더불어 조직한 반유신 민주화운동 청년조직이다. 이는 청년운동 최초의 공개조직으로 1978년 5월 12일 기독교회관에서 창립선언을 발표하였다. 그 창립 취지는 “우의를 돈독히 하고 부당한 정치적 압력에 대하여 자위책을 마련키 위하여, 나아가 현재의 상황을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젊은 세대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가입대상은 “학원에 재(在)하던 자로서 민주 활동으로 인하여 구속 및 제적된 자와 민주·민권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청년층” 이었다.

민주청년인권협의회는 창립직후부터 유신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5월 25일 정문화, 박계동, 김학민, 문국주, 배경순, 장만철 등 운영위원 6명 전원이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어 협회 탈퇴를 종용받으며 협박, 공갈, 폭행을 당했다. 이후 ‘민청협’회원들은 주요 감시·연행의 대상이 되었다. 1978년 11월에 조성우를 회장으로 새 집행부가 구성되어 ‘민청협회보’를 발행하는 등 운동의 폭을 넓혔으며 “민중의 기본 권리와 자유가 정권 안보를 위하여 철저하게 탄압당하고 있는 현실을 통렬히 비판했다. 청년 학생들에 대한 유신정권의 탄압이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민청협은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의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갔다.

정문화, 조성우, 양관수, 이우회, 이해찬 등이 회장직을 맡아온 ‘민청협’은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단지 인권문제만이 아닌 민주화 문제와 조직의 확대를 겨냥하면서 명칭도 민주청년협의회로 바꾸었다. 그동안 민주 청년의 표면에 부각된 집결체로서 다양한 민주화 운동을 펴온 민주청년협의회는 1979년 11월 24일 ‘YWCA위장결혼식사건’에 관여하여 많은 구속자를 냈다.

주요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편,『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민주화운동관련 사건· 단체 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1970년대)보고서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유신과 반유신』

민주청년인권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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