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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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 봉제 노조는 강철같은 연대투쟁으로 승리를 쟁취하였읍니다 등록번호 : 00882625 날짜 : 1988.04.0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일어난 옥산봉제 노조에 대한 탄압을 분쇄하고자 20여일간 집회 및 가두시위를 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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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계 제34호 등록번호 : 00889489 날짜 : 1977.10.0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봉제계의 상황 및 현실에 대하여 소개하고 노조활동을 기재하고 봉제기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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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계 제36호 등록번호 : 00889493 날짜 : 1977.12.0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봉제계의 상황 및 현실에 대하여 소개하고 노조활동을 기재하고 봉제기계에 대하여...
사진사료 5건
더 보기박물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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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알았던 죽음 그러나 아무도 몰랐던 죽음 - 김경숙 일기 요약설명 : 봉제 공장을 전전하던 그는 ‘돈을 두 배나 더 벌 수 있다’는 육촌 언니의 말을 듣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청량리 등지에 있던 한품섬유, 태진산업, 이천물산 등을 전전하며 주로 봉제 미싱사로 일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가 다닐 수 있는 곳은 월급이 밀릴 정도로 영세한 곳이거나 아니면 운영이 어려워 폐업을 하는 회사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부쳐주는 돈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와 동생을 생각하며 늘 마음을 졸였다. 사랑하는 동생 준곤에게 누나가 일하는 공장이 앞으로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구나.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누나의 가슴이 어찌나 떨리고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리던지. 그래서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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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사건 - 여공들, 민주주의의 봄을 부르다 요약설명 :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민심을 사기 위해 미국과 일본에서 사양화된 섬유, 봉제, 신발, 조선 등 인력집약형 공장들을 대거 유입해 산업화에 나섰다. 이는 산업자본 축적의 밑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이에 동원된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장시간 노동과 가난뿐이었다. 수많은 농민과 그 자녀들이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도시의 공장으로 몰려들었으나 좌절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숨진, 만 21세의 여성노동자 김경숙의 고백이다. 맨 처음엔 커다란 포부와 꿈을 안고 서울로 왔으나 막상 와서 보니 별 것 아니었습니다. 고향에서 생각했던 꿈을 이루기가 어려웠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9건
더 보기- 구국청년당(가칭) 대표 고정훈, 김구·조봉암 살해 배후 폭로 일자 : 1960.5.24 분류 : 과거사 진상규명운동 요약설명 : 전 교통부장관문봉제의 부하 장은상 포병중령에게 김구 살해를 지시했고, 장은상은 안두희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조봉암간첩사건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특무부대장김창룡 등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전 대통령 비서박찬일·임철호·장경근·김준연 등 4명이 공모하여 살해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하였다. 고정훈은 곧 이들을 법적으로 고소하는 동시에 극한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말하였다.『조선일보』 1960. 5. 24 석3면 ; 『대구매일신문』 1960. 5. 25 석1면 ; 『영남일보』 1960. 5. 25 석1면. 구국청년당(가칭) 대표 고정훈이 조봉암간첩사건에 김준연 의원이 관련되었다고 발언하자 김 의원은 이를 정치적...
- 각계 단체, 10월 유신 지지 성명 발표 일자 : 1972.10.30 분류 : 정치·국제관계 > 정부·여당 요약설명 : 30일 전국예식업연합회(회장 이호준), 대한상이군경회·대한전몰군경유족회·대한전몰군경미망인회, 월남참전전우회, 한국청년회, 1·20동지회, 한국아동도서보급협회, 대한치과기공사협회(회장 김성회), 아시아자유청년연맹 한국위원회(사무총장 심항섭), 아세아종교연구협의회(사무국장 노재기), 한국자활개척단중앙본부(단장 백재정), 한국봉제공업협회(회장 권태홍), 한국용접기술협회(회장 윤동식), 대한승공경신연합회(회장 손명진), 한국자동차교육협회(회장 진창식) 등이 10월 유신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선일보』 1972.10.31. 1면
- 반도상사 노동자들,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 일자 : 1974.2.26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요약설명 : 준공되었고 이외에도 부산, 김포 공장이 있었다. 반도상사 부평공장은 가발에서 봉제·피혁제품으로 생산을 바꾸게 되었다. 1970년 초 400여 명이던 노동자 수가 연말에는 700여 명으로 늘어나 주야간 2교대 12시간 노동을 하였다. 1971년 3월 공장건물을 신축하면서 노동자가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노동자들은 1972~1974년 최대의 가발경기 호황으로 인원증가 없이 하루도 쉴 수 없는 곱빼기 철야작업을 하였고, 퉁퉁 불어터진 국수로 점심식사를 대신하였다. 취업규칙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화장실에 갈 때도 팻말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관리자들은 조금만 밉보여도 욕설과 폭언을 일삼았으며 폭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1974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