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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갑
사업개요
- 70년대 민주노조와 5.17이후 정화조치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1-2차년도 과제인 '70년대 민주노조와 5.17이후 정화조치'는 1970년대 민주노조의 결성 경위와 활동 성과를 파악하고, 1980년 신군부가 단행한 ‘정화조치’의 실상을 관련자 구술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역사 자료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당시 노동운동가와 지원 조직의 활동 및 삶을 고찰함으로써 기존 생산된 자료나 연구 성과의 사실관계를 재규명하고, 5·17 이후 정화조치가 각 사업장에서 작동한 방식과 그 구체적인 피해 양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과거의 활동이 당사자들의 이후 생애와 인식에 미친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70~80년대 노동운동사가 지니는 현대적 의미를 조명하고 관련 사건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자 한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권순갑
-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 구술일자
- 2019. 9. 27
- 구술장소
- 전태일기념관 회의실
- 구술시간
- 159분
구술컬렉션 > 노동운동 > 70년대 민주노조와 정화조치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57. 경북 예천 출생
1973. 3. 서울 상경 YH입사(미용실)
1976. YH노동조합 대의원
1977. YH노동조합 쟁의부장
1978. 크리스찬 아카데미 교육
1978. YH노동조합 부지부장
1979. 신민당사 점거 투쟁 당시 대외 활동, 수배
1979. 10. 30 신민당사 점거 투쟁 관련 연행, 구속
1985. 대동인쇄소 취업
1986. 5. 인천 5.3사태 관련 보안사 연행 조사(유인물 제작)
1990. ~현재. 동방기획 대표
- 구술내용 요약
-
권순갑은 1955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출생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동대문구 면목동 언니 집으로 상경했다. 집 인근에 붙어있는 YH 공고문을 보고, 입사했다. YH는 전성기였으며, 이른바 ‘미용실’로 부서 배치되었다. 사장 진동희는 충청도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충청도 출신의 여공들이 많았다. YH는 가발을 생산했는데, 100% 수출이었다. 상여금과 야근수당이 없었다.
YH 노동조합은 1975년 (5월 24일)에 결성되었다. 초반 노동조합 활동에 열심이었던 분들에 대한 기억은 없다. 최순영 지부장을 강원도 횡성으로 내려 보냈던 것은 기억이 난다. 1976년 대의원으로, 1977년 쟁의부장으로, 1978년 부지부장으로 참여했다. 1977년에 기숙사에 입사했는데, 매우 열악했다. YH 노동조합은 산업선교회, JOC와 관련이 없다. 크리스찬아카데미 교육은 노동조합 집행부가 거의 대부분 받았다. ‘세븐클럽’이 실존했는가 여부는 모르겠다. 사무장은 민경애가 결혼하면서 박태연으로 바뀌었다. 박태연과 친구여서 노동조합에 관계를 갖게 되었는데, 박태연은 매우 현명하고 업무를 잘 수행했다. YH는 최고 성장기에는 종업원이 4,000여 명이었다.
회사는 1977년 충청북도 옥천군으로 공장을 이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가 폐업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노동자들이 대거 사직했다. 이들은 다른 회사로 취업하기도 했으나, YH 근무 경력은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권순갑은 가발 샘플을 만드는 부서여서 사직을 면했다. 회사는 인천에 있던 봉제공장을 면목동으로 이전시켰고, YH의 주력 생산품은 가발에서 신사복으로 바뀌었다. 이 일을 위해 400여 명이 이동했는데,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1978년경 노동조합은 인근의 동일교회 야학을 매개로 소모임 활동을 하고, 연극 연습 등을 했다. 회사는 노동조합 간부들을 포섭하려 했으나, 한 명도 넘어가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매우 민주적으로 운영되었고, 단결력이 높았다.
회사가 1979년 3월 29일 폐업을 공고할 무렵에는 종업원이 1,000여 명 가량이었다. 노동자들은 4월 13일부터 현장에서 2박 3일을 농성하며 타개책을 모색했다. 해결이 안 되자, 7월 30일부터 농성에 다시 들어갔다. 회사는 8월 7일 폐업공고를 발표했고, 10일까지 임금과 수당 그리고 퇴직금을 인수하라고 했다. 진압이 곧 시작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자, 8월 9일 신민당사 농성에 들어갔다. 이 일은 기독교청년회에서 활동했던 황주석의 역할이 컸고, 이문영, 문동환, 고은, 인명진, 김영삼 총재 등이 지원했다. 권순갑은 농성장 외부에서 YH의 실정을 언론과 은행 그리고 단체 등에 알리는 일을 맡았다.
구술자는 숨어 지내다 10월 30일 연행되었고, 12월 말경에 석방되었다. 바로 고향 경찰서로 인계되어 감시를 받고 지냈다. 매년 김경숙 추모제를 지내왔는데, 현재는 여성노동계에서 담당하고 있다. ≪YH노동조합사≫의 실제 집필자는 고대 학생운동 출신자였던 천영초였다. YH 출신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이 되지 않았다. 1985년경 문익환 목사가 시무하던 한빛교회를 다녔는데, 여기에서 알게 된 윤여연을 통해 대동인쇄소에서 일했다. 윤여연이 민청련 사건으로 잠행함에 따라 사업체를 맡았다. 1986년 인천5·3사건에 배포될 유인물을 제작해 보내주고, 바로 연행되어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풀려나자, 바로 인쇄소를 폐업하고 1년 동안 숨어 지냈다. 1987년에 인쇄골목에서 동방기획을 개업하여 6월항쟁에 사용된 유인물을 엄청나게 인쇄했으나, 제대로 비용을 받지 못해 손실이 컸다. 노동조합 활동가들 가운데 기억나는 인물은 민경애, 김양호, 김은정, 장남수, 고영난, 설영란, 최순영, 정만옥 등이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YH무역 노동자들이 신민당사 점거농성에 들어가는 하루 전 과정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