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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임
사업개요
- 70년대 민주노조와 5.17이후 정화조치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1-2차년도 과제인 '70년대 민주노조와 5.17이후 정화조치'는 1970년대 민주노조의 결성 경위와 활동 성과를 파악하고, 1980년 신군부가 단행한 ‘정화조치’의 실상을 관련자 구술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역사 자료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당시 노동운동가와 지원 조직의 활동 및 삶을 고찰함으로써 기존 생산된 자료나 연구 성과의 사실관계를 재규명하고, 5·17 이후 정화조치가 각 사업장에서 작동한 방식과 그 구체적인 피해 양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과거의 활동이 당사자들의 이후 생애와 인식에 미친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70~80년대 노동운동사가 지니는 현대적 의미를 조명하고 관련 사건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자 한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김은임
-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이소영
- 구술일자
- 2019. 7. 4
- 구술장소
- 4.9통일평화재단
- 구술시간
- 158분
구술컬렉션 > 노동운동 > 70년대 민주노조와 정화조치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74. 6. 삼성제약공업주식회사(성동구 소재) 입사
1975. 삼성제약 노동조합 가입
1981. 4. 삼성제약 노동조합 위원장 선출
1987. 서노협 활동
1988.~1989. 세종대학교, 모로토라 등 파업 현장 연대투쟁
1990. 노동부의 업무조사 거부를 이유로 구속
1991.~2002. 한국노총 화학노련 여성국장, 교육국장
2002.~2004. 한국노총 조직국장
2004.~2006. 한국노총 경기본부 여성국장
- 구술내용 요약
-
김은임은 1955년 경기도 가평에서 출생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가정형편상 진학하지 못하고 상경했다. 동대문구 장안동 소재 풍미제과에서 1년 간 근무했다. 1974년 6월 6일 삼성제약에 입사했다. 삼성제약은 계절 요인에 따라 근무환경이 달랐고, 임금은 보통수준이었다. 회장은 김영설인데, 약사회 초대 회장을 지낼 정도로 유명했다. 그렇지만 1977년 방위성금 등을 납부하지 않는 등 정부에 미온적 협조로 세무조사 등을 받았고, 1977년부터 10년간 법정관리를 받았다. 근무 시간 이후 무보수 노동에 규칙적으로 동원되었고, 비자발적으로 야근이 이루어졌다. 삼성제약은 예상하는 것보다 위상상태가 좋지 않았다. 경조사 휴가도 없었다. 노조가 결성된 후에 유급휴가가 보장되었다. 급식도 열악했다.
1975년 5월 한국노총 화학노련의 홍보를 계기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했던 4인 가운데 지부장 후보는 신고필증이 나오기 전에 회사의 압력으로 사직하고, 3인은 다른 사업장들로 전출되었다. 회사는 사장 비서(김영남)를 내세워 어용노조를 만들었다. 약 1년 만에 김영남이 결혼하고 사직하면서, 지부장을 새로 선출하게 되었다. 회사는 김영순(김현진), 권오선 등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했던 사람들을 회유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총회를 휴회하고 개회하지 않았다. 조향자, 김명선 등도 주요 인물들이었다. 한편 1972년 정종애 등이 추석보너스 인상지급 요구투쟁을 했던 사안과 1974년 여름 상여금 관련 투쟁은 입사 이전과 직후여서 거의 기억이 없다. 김석자 등이 1972년에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1971년 외자기업 한국화이자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된 것이 계기가 되어 화학노련 후원으로 제약회사들에서 노동조합이 대거 결성되었다. 1976년 8월 권오순이 지부장으로, 김영순은 부지부장으로, 정종애가 부녀부장에 선임되었다. 윤미숙은 간부가 되었다. 회사가 권오순이 학력을 속였다며 해고하자, 1977년 경 김영순이 정식으로 지부장이 되었고, 김은임이 부지부장이 되었다. 이 체제가 거의 그대로 1980년 정화조치 시점까지 유지되었다.
1977년 회사가 법정관리를 받으면서 노동조합 활동이 여의치 않았다. 회사는 노조를 장악하기 위해 소모임을 결성했다. 삼성제약 노조는 산업선교회나 JOC와 인연이 없었다. 필요하면, 인근 대학들의 학생과 노동부문 전문가(단체)들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았다. 따라서 다른 노조들에 비해 내부 구성원들의 결속력이 높았고, 이른바 노동문화의 수준도 높았다. 삼성제약 노동조합과 화학연맹의 관계도 비교적 좋았다.
1980년 임금투쟁은 3월에 마무리되어 당국의 탄압을 피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노보를 제작했는데, 1985년 빨갱이라고 탄압을 받았다. 김은임은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인맥도 중요했다. 한국노총이 1980년 9월 정화조치 대상자들을 하달하자 항의 방문했다. 12월에는 당국이 일제히 관련자들을 연행했다. 삼성제약에서는 지부장 김영순과 김은임이 합수5국으로 연행되어 약 2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다. 김영순은 정화조치의 대상자로, 김은임은 관련자로 조사를 받았다. 김영순은 지부장을 사퇴해야 했고, 김은임이 지부장이 되었다. 그렇지만 김영순을 지도위원으로 선임해 노동조합 활동에는 영향이 없었다. 1985년 임금인상 투쟁을 어렵게 전개했는데, 기대보다 낮은 수준에서 타결되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노고를 인정해주었다. 1990년 3월 12일 노동부 업무조사 거부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으나, 해고되지는 않았다.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민주화실천위원회의 결성과 활동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화학연맹, 한국노총 조직국장, 한국노총 경기본부 여성국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전노협 참여 등의 권유도 있었지만, 한국노총 민주화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노동운동에서 급진주의나 편을 가르는 방식의 사고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삼성제약 노동조합 지부장 활동 중 노동계 정화조치에 항의하다가 합수부에 끌려간 과정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