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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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옵는 주교님[서강대학교 노조에 대한 부당한 대우 관련]
등록번호 : 00224003
날짜 : 1988.03.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서강대노조의 요구사항에 대한 서강대의 부당한 대우에 관해 알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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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통일일꾼들이 문익환 목사에게 보내는 서신]
등록번호 : 00952399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통일일꾼들이 문익환 목사에게 통일되는 그 날까지 건강히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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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원신문 제7호
등록번호 : 00116326
날짜 : 1990.03.13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사진사료 9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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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에서 열릴 서총련 학생들의 통일제 집회를 막으려 출입하는 학생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경...
등록번호 : 00711704
날짜 : 1994.08.0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1일부터 서강대에서 "통일제" 를 열 계획이었으나 학교측의 불허와 전경들이 타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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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에서 열릴 서울지역고교생 협의회 결성식 원천봉쇄에 나선 경찰과 검문검색 당하는 학생들
등록번호 : 00712242
날짜 : 1989.07.2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하오 서강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서울지역고교생 협의회 결성식의 원천봉쇄에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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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 사건으로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는 서강대 김윤
등록번호 : 00718694
날짜 : 1975.02.17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서강대학교 김윤씨가 출감했다. 풀려난 사람 중 유일한 여성인 서강대 김윤씨는...
영상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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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한국시민사회의 과제-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등록번호 : 00549172
날짜 : 1997.00.00
구분 : 문서류 > 음성
기증자 : 한국YMCA전국연맹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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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등록번호 : 00900242
날짜 : 2008.00.00
구분 : 문서류 > 음성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면담자] 이창훈; [과제명] 1977년 서강대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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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
등록번호 : 00900243
날짜 : 2008.00.00
구분 : 문서류 > 음성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면담자] 이창훈; [과제명] 1977년 서강대시위
사료 콘텐츠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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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
요약설명 : 책을 좋아했다. 덕분에 서강대에 입학했다. 그래도 한림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서강대 근처로 집을 옮긴 것도 윤을 위해서였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 다행히 건강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한림은 늘 윤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엄마. 나 다녀올게.” 가볍게 돌아선 윤이 총총 골목길을 달려 나갔다. 문을 닫으려던 한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악수를 한 것일까? 유신반대 데모라도 하려는 것일까?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공표한 뒤 세상이 뒤숭숭했다. 박정권은 초헌법적인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동시에 전국적인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뒤, 유신헌법을 통과시켰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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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선 어머니들
요약설명 : 3월28일 서강대에서 있었던 유신헌법 및 대통령 긴급조치 철폐를 위한 성토대회에서 윤이 선언문을 낭독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언문을 낭독하기도 전에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이후로 윤이를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한림이 딸을 찾아 경찰서로 학교로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4월 3일, 긴급조치 4호가 선포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주요 대학들이 모여 유신과 폭압적인 긴급조치에 저항하기 위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이름으로 민중민족민주선언 성명서를 낸 것을 빌미로 정부를 전복하고 폭력혁명을 일으킬 목적이 있다는 죄를 날조하여 학계 종교계의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였다. 한림은 윤이가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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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련과 분신정국 - 죽음의 굿판이었나, 희망의 몸부림이었나
요약설명 : 막 떠오를 무렵 김기설이 서강대 5층 옥상에서 온몸에 불을 붙인 채 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당국은 그의 죽음을 곧 이른바 ‘유서대필사건’으로 몰아나갔다. 친구였던 강기훈이 그의 유서를 대신 써주었다는 것이다. 국과수의 필적 감정 결과가 그 증거였다. 최근에 국과수의 필적 감정이 엉터리였다는 것이 밝혀지긴 했지만 당시엔 보수 언론의 지원을 입은 검찰의 대대적인 공세 앞에 그 숱한 죽음이 일시에 희극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자발적 숭고한 죽음이 아닌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우울하고, 타의적 죽음.... 박홍 총장 같은 이의 입에서 죽음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는 식의 엽기적인 발언이 쏟아져...
구술 컬렉션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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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2개 대학생 대표들,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 개최
일자 : 1964.5.2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서강대 25일 상오 11시 30분부터 서강대 학생 300여 명은 동교 학생휴게실에 모여 ‘난국타개 학생궐기대회’를 가졌다. 학생들은 약 30분 만에 해산했다. ▶국제대 25일 하오 8시 30분, 국제대 학생 100여 명은 동교 204호 강의실에 모여 난국타개 성토 대회를 열고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국민에 보내는 메시지를 채택했다. ▶부산 동아대 25일, 부산에서는 동아대생 3,000여 명동아대 시위학생 수에 대해 1,000여 명(『경향신문』 1964.5.25 석1면), 4,000여 명(『동아일보』 1964.5.25 석7면) 3,000여 명(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473쪽)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상오 9시 30분, 성토 및 궐기대회를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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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즉심, 5명 훈방
일자 : 1965.2.18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18일, 17일의 시위 과정에서 연행됐던 15명 중 학생 5명은 훈방되고 민간인 10명만 즉심에 넘어갔다. ▶훈방된 학생 유영수(동대 학생회장), 장홍도(동대 학생부회장), 김암(서강대), 신용철(외대 학생회장), 신관균(학생) ▶즉심에 돌린 민간인 김종완(민주당 중앙상무위원), 윤병한(민주당 전 국회의원), 한동학(동 섭외부차장), 박순덕(동 서울시 당부녀부장), 문무회(민정당 청년부차장), 장희민(동 당원), 김득(동 당원), 신상진(동 당원), 하용선(민주당 용산 구당부위원장), 이광호(민주당원)『동아일보』 1965.2.18 석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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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대학 학생, 한일회담 및 휴교조치 반대 성토대회 서울대생, 일장기 태우고 해산
일자 : 1965.4.2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2시 반쯤 서강대 학생 300여 명이 교내 구내식당에서 학생회 주최로 한일회담반대 성토대회를 열고 “정부는 정권유지만을 위한 외교를 하지 말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거시적인 외교를 하라”는 대정부 호소문과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채택된 결의문은 “정부는 사탕발림의 청구권과 어업근대화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고 평화선 양보론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물어보아 국민투표에 붙이라”는 등 11개 항목으로 돼있다.『대학신문』 1965.4.26 1면, 『동아일보』 1965.4.20 석7면, 『경향신문』 1965.4.20 석3면. 경향신문은 서강대 시위학생수를 500명으로 기재. 한편 이날 서울대 총학생회는 문리대 성토대회와 관련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