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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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法大 學生 民?機構(가칭)
등록번호 : 00071027
날짜 : 1969.12.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정무형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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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법대학생 시위사건 사건배경, 사건경과, 사건결과]
등록번호 : 00113691
날짜 : 1979.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8일 서울법대생의 시위 사건의 개요와 결과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평가와 유인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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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 서울法大 終講 - 勤勞改善운동 集團化대비
등록번호 : 00444965
날짜 : 1970.11.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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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
요약설명 :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고문치사 되었다. 많은 사람의 증언과 해외 언론의 보도가 이를 밑받침하고 있다. 이렇게 죽어간 사람이 최종길 교수 한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다. 인권유린의 수부 중앙정보부 등은 마땅히 해체되어야 하며 인권유린을 인정하는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는 철폐되어야 한다. 3. 민청학련사건에서 나타난 인권유린의 사례는 당국이 12월 4일의 우리의 제의를 사실상 거부함으로써 확인되었다. 정부는 마땅히 구속인사 203명 전원을 조속히 석방함으로써 인권을 유린한 죄과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4. 근로자의 인권은 어느 경우에나 보장되어야 한다. 근로자가 자기 이익의 옹호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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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도 떨어뜨린다_ 공포정치의 산실 중앙정보부
요약설명 : 폭력은 잔인한 고문으로 변해갔다. 1973년 유신정권 치하에서 벌어졌던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의 죽음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40대 초반의 젊고 건강했던 그는 유럽거점간첩단사건에 대해 수사 협조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서 근무하던 자기 동생과 웃으면서 들어갔다가, 3일 만에 중앙정보부 건물 7층 화장실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으로 돌아왔다. 당시 중정 차장은, “간첩 혐의를 자백하고, 기관원의 눈을 피해 화장실에서 투신하였다.”고 발표했지만 전기고문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당하다가 죽자 7층에서 던져 자살로 조작했음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으로 밝혀졌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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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원, 의문사 제1호의 죽음을 기록하다
요약설명 : 전 중앙정보부원 최종선 님이 기증해주신 육필 기록, 우리나라 의문사 제1호라고 얘기하는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를 밝히는 비망록이다. 최종길은 최종선의 형이다. 1973년 10월 2일, 유신체제에 항의하는 첫 시위가 서울대에서 일어났다. 대학가의 시위는 일파만파 번져갔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과 구속, 연행에 당시 법대의 학생과장이었던 최종길 교수는 교수회의에서 "부당한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10월 16일, 최종선은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수사에 필요하니까 형의 협조를 바란다'는 중앙정보부 간부의 얘기에, 국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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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동 서울대학교 학생들 시위 돌입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서울대학교는 단과대학들이 분산되어 있었는데, 문리대와 음대·미대·법대는 동숭동에, 의대와 약대, 수의대는 문리대 건너편 연건동에, 사대는 을지로6가에, 상대는 안암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화동 입구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관들이 시위대를 저지하면서 쌍방 간에 일대 충돌이 발생해 한동안 수라장을 이루었다.내무부는 계속되는 지방의 시위와 18일에 있었던 고려대 학생시위에 대한 예방책으로 19일 이른 아침부터 이미 서울 거리에 완전무장한 경찰관들을 배치하고, 각 대학 주변에 경찰관들을 사전 배치하였다(현역일선기자 동인편, 82-83쪽).시위대 선봉이 중앙공업연구소종로5가 방향으로 서울대 문리대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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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사령부 사망자 추가명단 발표, 사망자는 124명으로 증가
일자 : 1960.4.2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군
요약설명 : 학생) •성명미상(남 19, 충무로4가) •김명학(외과 보관) •최인자(여 15, 회현동2가 61) •성명미상(남 32, 청량리 삼일의원 보관) •성명미상(남 18, 서울위생병원 보관) •이정옥(21, 경기공고 학생) 서울대학병원 •김병진(34, 주소미상) 연세대병원 •최정규(신원미상) •이회희(여, 연령·주소 미상) 《부상자》 반도병원 •김상훈(서울대 법대 4년) •김면중(고려대 철학과 4년) 대동병원 •우정균(휘문중) •이태자(청구공민고교) •최숙자(여, 인천) •안보남(고려대 경제과 1년) 이대 신촌병원 •조용구(21, 고려대 2년) 출처 :『조선일보』1960. 4. 23 조3면 ;『동아일보』1960.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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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 올린 교수단,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라”절규
일자 : 1960.4.25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이항녕(고려대)·김증한(서울법대)·권오돈(연세대)·이종극(중앙대)·김영달(동국대)·조윤제(성균관대)·유진(외국어대)·이종우(고려대)·이희승(서울대 문리대) 등 9명의 교수들이 기초위원으로 뽑혀 별실에 모여 시국선언문 초안의 문구를 약간 수정하였다.이상은, 224쪽. 몇몇 기록에는 이들 ‘9인 기초위원’의명단이 다르게 나와 있는데, 이항녕과 권오돈, 유진 교수 대신 정석해, 이정규, 한태수 교수가 들어가 있다(조화영편, 148쪽 ; 김재희 편, 『청춘의혈 : 역사를 창조한 젊은 사자들』, 호남출판사, 1960, 109쪽 ; 안동일·홍기범 공저,277쪽). 여기서는 교수단 시위의 주요멤버였던 이상은의 글을 존중하여 서술하였다. 이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