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6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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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목사가 박용길장로, 문바우, 윤동주에게 보내는 옥중 서신 1991년 7월]
등록번호 : 00827224
날짜 : 1991.07.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박용길장로와 문바우와 윤동주에게 보내는 안동교도소에서 보내는 편지(제19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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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尹東柱등 37명 명예졸업장
등록번호 : 00951718
날짜 : 1997.06.2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신사참배에 저항하여 숭실학교를 떠난 윤동주 등 37인에게 졸업장을 주기로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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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윤동주 친우' 문동환 목사, '동주' 각본가 만나 그를 추억하다
등록번호 : 00952516
날짜 : 2016.03.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한겨레 신문에서 문동환의 자택에서 열린 영화 '동주'의 상영회를 취재한 내용을 쓴...
사진사료 1건
더 보기박물사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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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 후원 손수건-윤동주 서시 발췌]
등록번호 : 00007838
날짜 : 1975.00.0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김옥실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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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시]
등록번호 : 00955069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박용길 장로가 보고 쓴 붓글씨.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윤동주와의 이야기를 다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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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등록번호 : 00952031
날짜 : 1985.07.28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박용길 장로가 문익환 목사와 지인들의 사진들을 모아놓은 앨범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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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의 생애를 바꾼 세 친구
요약설명 : 탄생은 윤동주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문익환은 윤동주의 시재(詩才)를 부러워했고 윤동주는 송몽규의 문재(文才)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윤동주 사후에 발견된 그의 시들은 한국문학의 빛나는 봉우리로 우뚝 섰다. 문익환은 그중에서 〈서시〉를 떠올려 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와했다(……)’. 시의 구절들이 가슴속에 아프게 박혀 왔다. ‘몽규야! 동주야! 너희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 낼게.’ 하고, 문익환은 굳은 다짐을 했다. 훗날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한 뒤 목사가 된 문익환은 히브리어에 능통한 구약의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성서 공동번역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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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회복의 교육을 詩로 노래하다_ 성래운
요약설명 : 오늘은 그저 제 심경을 담은 시 한 편을 낭송하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목청을 가다듬어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때로는 낮게 때로는 배꼽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결기에 찬 목소리로, 높낮이와 쉼과 이음이 곁들어진 그의 낭송은 살벌한 법정 안을 순식간에 딴 분위기로 만들어버렸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최후진술 대신 시를 낭송하는 동안, 한 번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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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민주구국선언-유신반대운동의 불꽃
요약설명 : 벗 윤동주와 함께 성장했던 것을 일생의 자랑으로 여겼다. 그는 또한 독립군으로 활약한 벗 장준하와 한 하늘을 이고 있는 것을 무한한 자부심으로 삼고 있었다. 그는 그 무렵 공동성서 번역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는 이 대업을 이루기 위해 침식을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된 뒤부터는 신학자로서 성서 번역에만 몰두하기가 몹시 괴로웠다. 1974년 긴급조치가 발령된 뒤, 종신 총통으로 군림해가는 박정희의 1인 독재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용납이 되지 않았다. 1975년 선포된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금지했다. 집회와 시위, 정치 참여 또한 불가능했다. 조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