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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문리대생 40여 명, 단식농성 3일째
일자 : 1964.6.1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2시 45분에는 단식 24시간 돌파를 기념하기 위해 ‘반민주요소 소각식’을 거행했다. 단식대원들은 4·19 탑 앞에서 일제히 기립해 길이 1미터, 폭 30센티가량의 백지에 ‘사찰, 폭력, 사형, 기만’, ‘통일대책 없는 무능’, ‘소영웅적 민주정치’, ‘조국 없는 매판자본’, ‘주체 잃은 외세의존’, ‘무르익는 일본 예속’, ‘불온문서 연구서적’, ‘단1년만 기다려라’ 등 8개 항목을 써서 노끈에 나란히 매달아 식장에 걸어 놓고 한 장씩 차례로 박수 속에 소각했다. 검은 안경을 쓴 황소와 매카시가 악수하는 그림을 불태웠다. 이 소각장면을 보기 위해 문리대 정문 앞과 4·19탑 주변에 약 200명의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둘러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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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 대규모 시위, 고려대·서울대 등 약 3,000명
일자 : 1964.6.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다음 단식농성 중 인 문리대생들을 찾아가 격려하고 11시 50분쯤 “누구를 위한 정권이냐, 국민은 배고프다”, “사수하라 학원의 자유”, “지양하라 공포정치”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데모에 나섰다. 종로5가까지 진출, 연좌데모를 벌였던 시위대는 “데모가 난동이냐? 쿠데타가 난동이냐?”,“간다 간다 교도소로 단식투쟁하러 간다”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이 동원한 6대의 트럭에 자진분승, 동대문서와 종로서에 연행되어 갔으며, 트럭이 만원이 되어 타지 못한 30여 명의 학생들은 도보로 자진 동대문서에 출두했다. 중앙청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 500명의 경찰관과 약 700명의 군인이 집결해 있다.『경향신문』 196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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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농성 5일째, 각 대학으로 확산 단식학생들 시위대에 합류
일자 : 1964.6.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찾아 “학생들은 외롭지 않다.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는 단식투쟁이 가장 좋은 길이며, 투쟁의 목표는 위정자들의 무기보다 그 양심을 찌르는 데 두어야 한다”고격려하고 단식투쟁의 방법을 설명해 주고 돌아갔다. 이들 단식학생들은 단식 100시간을 돌파한 뒤 오후 5시경 단식을 중단하고 가두시위에 나섰다. 문리대생들은 단식 때 차림으로 앞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고문을 당한 송철원을 들것에 들고 거리로 나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이던 그를 이현배가 산책 나오는 척하다 대기 중이던 택시에 태워 데리고 온 것이다. 단식학생들은 깔고 누웠던 가마니를 뒤집어쓴 채 태극기를 앞세우고 교문을 나섰다. 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