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 콘텐츠 2건
더 보기-
민심과 권력 사이 - 어느 야당의 선택요약설명 : 등장하고 신한민주당과는 별도의 군중대회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개헌투쟁의 중심은 시간이 갈수록 신한민주당을 벗어나 민주화운동 진영과 국민들에게로 이동했고, 정권교체의 열망으로 거세게 타올랐다. 전두환 정권에게는 기회였다. 개헌투쟁이 타오르던 4월 30일, 전두환 정권은 신한민주당을 만나 1986년 초에 선언한 ‘임기 내 개헌불가’의 입장에서 물러나 정치권 안에서 개헌논의를 하고 가두서명운동은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신한민주당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소수학생의 과격한 주장은 지지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입장 표명에 국민들은 당황했고 분노했다. 5월 3일, 인천집회가...
-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향한 열망요약설명 : 개헌 현판식 대회’를 추진하였으며, 이 대회에는 직선제 개헌을 바라는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다. 이와 더불어 지식인·종교인·교수들의 시국성명서가 발표되었고 이는 직선제 개헌의 당위성을 대중들에게 선전함과 동시에 직선제 개헌의 열기를 확신시키는 계기점이 되었다. 직선제 개헌을 통해 민주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열망은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라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던 안영삼 선생은 <밴쿠버“개헌서명운동”을 돕는 모임>을 결성하고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개헌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86년 4월 19일 발표한 ‘한국의 민주화 개헌서명운동을 지지하면서’라는 성명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