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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고려대·연대생 약 5,000명, 대일 굴욕외교에 반대하며 5·16 이후 최대 규모 ...
일자 : 1964.3.2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2단계 출발점이라고 평가하였다. 1960년 4·26 이후 5·16쿠데타까지 학생시위는 빈번하였으나, 거의 다 ‘학내분규’라는 말이 의미하듯 학내문제 때문에 일어났으며, 4·19와 비교할 때 3·24는 상당한 시일에 걸쳐 준비된 것으로 여러 대학이 함께 나온 점에서 4·19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그보다 더 조직적이었고, 3·24 이후의 주요 시위도 갈수록 조직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3·24와 그 이후의 학생운동 주동자는 대체로 반정부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도 5·16쿠데타 이전과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한다.(서중석, 「1960년 이후 학생운동의 특징과 역사적 공과」, 『역사비평』, 역사비평사, 1997년 겨울호, 28~29쪽)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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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및 성토대회” 한일굴욕외교반대학생총연합회 주최로 열려
일자 : 1964.5.2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박동인(동국대 투쟁위원장)의 선언문 낭독, 민승(건국대 대표)의 결의문 낭독이 있었다. 대회장은 최루탄과 곤봉으로 장비한 100여 명의 경관들이 정문 앞 좌우에서 경비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은 장례식을 마치고 5·16이념, 민생고, 한일회담, 학원사찰 등에 대한 성토대회를 열었다. 성토대회는 각 학교 대표가 분담하여 진행하였다. 이들은 성토대회가 끝나자 하오 3시에 검은 관을 메고 교문을 나서서 “아이고, 아이고......”하는 곡을 하며 데모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전에 볼 수 없이 열띤 일반 시민들의 호응을 받으면서 1,000여 명의 시민들과 미대앞까지 진출했는데, 100여 명의 무술경관과 200여 명의 곤봉을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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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2개 대학생 대표들,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 개최
일자 : 1964.5.2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전국대학생의 공동의사와 공동행위의 결의임을 선포한다. 1. 오늘 우리의 행동에 편승하려는 여하한 당파도 이를 배제하고 규탄한다. 1. 금주 내에 우리의 의로운 주장이 관철될 획기적 전기가 이룩되지 않을 때는 4·19정신으로 실력투쟁도 불사할 것을 천명한다.1964년 5월 25일『경향신문』 1964.5.25 석1면, 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473~474쪽. 『6·3학생운동사』에는 선언문과 행동강령의 날짜가 5월 21일로 되어 있으나, 결의 선언 두 번째의 군인 법원 난입사건이 21일 새벽에 있었고, 『동아일보』 5월25일자 1면에 이 선언문과 행동강령이 실린 것으로 보아, 5월 25일의 오기인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