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농민기도회'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10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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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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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평고구마 피해보상 드디어 받다!(농민 기도회 경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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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536279
날짜 : 1978.05.0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YMCA전국연맹
요약설명 : 받다!(농민기도회 경과 보고)(때:1978.4.24~5.2, 곳: 전남 광주시 북동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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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청장-농민을위한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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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213457
날짜 : 1977.04.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농민을 위한 기도회 참석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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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근로자들을 위한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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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213488
날짜 : 1978.05.0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농민,근로자들을 위한 기도회 복음 및 성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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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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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노동자를 위한 안동교구 기도회 및 농민부채 탕감 농민대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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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00959
날짜 : 1986.04.16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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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 및 농가부채 탕감 농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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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44150
날짜 : 1986.04.16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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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문화회관에서 농민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 및 농가부채 탕감 농민대회를 마치고 가두행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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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44151
날짜 : 1986.04.16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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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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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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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가협 활동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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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수 증가와 목요기도회 등의 영향으로 설립되었다. 구가협은 이어 한국양심범가족협의회로 재편되었는데, 1985년 미문화원 농성 사건, 구로동맹파업, 민청련 사건과 관련하여 비슷한 시기 각기 투쟁하던 가족들이 서로 격려하고 뭉치게 되었고, 가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할 통합조직으로서 민가협이 설립되었다. 1985년 민가협 출범 이후 70년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와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등 종교 관련 단체 중심이었던 인권운동이 확장되었다. 민가협은 인권변호사 분배 선임, 옥바라지 등 구속된 가족을 지지하는 활동에서, 가족과 얽혀있는 사건을 비롯해 구치소와 교도소 내 폭력, 장기수, 조작간첩사건, 고문철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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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마 피해를 보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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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가농 전남연합회는 각계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보내거나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기도회를 여는 등 지속적으로 피해보상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농민들의 투쟁은 2년에 걸쳐 계속되었지만 농협과 정부의 무성의로 해결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농민들의 참여도 떨어지고 있었다. 긴 시간의 투쟁은 그렇지 않아도 생계가 곤란한 농민들에게 대부분의 피해를 그냥 감내해 내고 체념하게 만들었다. 이에 가농 농민들은 마지막으로 농민기도회를 열어 농협에 사건 해결을 촉구하려고 하였다. 1978년 4월 24일 광주 북동 천주교회에서 전국 각지의 회원 7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윤공희 주교와 농민회 지도 신부단의 공동 집전으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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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민주화운동의 선봉 - 가톨릭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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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전국에서 모인 가농 회원 700여 명과 민주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윤공희 대주교와 농민회 지도신부단의 공동 집전으로 기도회가 열렸다. 함평 피해농민의 정당한 보상과 농협의 발전을 위해 어떠한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내용의 선언문과 6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다음 날부터 농민들과 지도 신부단은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농협측은 문제해결은커녕 밤 몰래 성당 주변의 현수막을 철거하고 새벽미사에 오는 신자들을 막았다. 성당이 고립되자 민주인사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경찰은 무력으로 이들을 해산시키고 20여 명을 연행해갔다. 단식투쟁 소식은 빠른 속도로 전국에 퍼져나가 함평에서 일어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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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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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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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제3 시국선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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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5.2.6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화해하고 있는 우리의 형제이다. 강요된 비참 속에 체념을 씹고 있는 근로자와 농민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가톨릭 노동청년회와 가톨릭 농민회의 활동은 곧 우리의 그것이며 착한 사마리아인의 행동이라고 믿는다. 인권회복, 인간회복, 민주회복은 체제와 정권의 차원을 뛰어넘는 인간적 양심의 요구이다. 우리의 양심은 외친다. 우리 겨레는 지금 노예로 가는 길목에 끌려가고 있다. 양심의 요구를 거부함은 사탄의 길을 선택함을 의미할 따름이다, 우리는 모든 현세의 음모와 박해에도 우리의 기도를 계속할 것이다. 우리의 관심과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대한 공동의 신앙에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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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함석헌 등, 명동성당에서 3·1절 기념 미사 후 「민주구국선언」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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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6.3.1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16일 전주에서 있었던 기도회의 경과보고 형식으로 전주에서 올라온 문정현 신부가 김지하 어머니의 호소문을 낭독했으며, 마무리기도의 형식을 빌어 서울여대 이우정 교수가 재야인사 10명이 서명한 「민주구국선언」을 낭독했다. 9시 45분경 3·1절 기념미사는 끝났다. 「민주구국선언」은 문익환 목사가 1976년 2월 12일 초안을 작성하였고 함석헌, 김대중, 문동환, 이문영, 정일형, 윤보선 등과 협의를 통해 초안을 수정하여 완성한 것이었다. 한국기독교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Ⅱ), 684~690쪽.「민주구국선언서」 한국기독교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Ⅱ), 684~687쪽. 오늘로 3,1절 쉰일곱 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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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농민회 전남지구연합회, ‘농민을 위한 기도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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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7.3.22
분류 : 민주화운동 > 농민
요약설명 : 가톨릭농민회 전남지구연합회가 윤공희 대주교의 집전으로 ‘농민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였다. 전남의 농민들과 성직자들, 전국의 농촌 관계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2권, 가톨릭출판사, 1996,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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