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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와 노동자 권익옹호를 위한 주교단 성명서

심도직물은 강화도에 있는 규모가 큰 직물 공장이었다. 1947년도에 설립되어 한때는 100만 달러 이상의 수출규모를 자랑한 적도 있었으나, 노동자에게는 가혹하여 노동착취가 극심했다. 심도직물 회사측은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해 노조위원장 박부양을 부장으로 승진시키고 온갖 회유와 설득으로 노동조합에서 손을 떼도록 종용했다. 박부양이 이에 불응하자 1968년 1월 4일 회사는 그를 해고했다.

가톨릭노동청년회(JOC)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 의식을 깨우기 위한 교육과 노동조합 설립 및 활동을 지원하는 가톨릭의 청년 단체이다. 심도직물의 노동자 1,200여 명 중 900여 명이 JOC 회원이었다. 박부양의 해고사태에 항의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공장에서 노조회의를 소집하자, 회사측은 박부양이 해고되었으니, 박부양은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조합원들은 JOC 지도 신부인 전 미카엘 신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전 미카엘 신부는 성당에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었다.

그러자 심도직물 회사 간부와 경찰이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전 미카엘 신부를 찾아와 회의장소를 제공한 것에 대해 항의를 하면서 노조활동에서 손을 떼라고 말하고 전신부를 빨갱이 구속하듯이 구속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이어 회사는 “천주교 전미카엘 신부의 부당한 간섭으로 공장작업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게시하고 공장을 폐쇄하였다. 

뿐만 아니라 강화도 내 21개 직물회사 대표들이 모여 전 신부의 사상이 의심스러우니 앞으로 JOC 회원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결의문을 작성해 중앙일간지에 발표했다. 당시 JOC의 총재는 김수환 주교였다. 김수환 주교는 즉시 조사단을 구성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주교단은 노사문제와 관련한 최초의 비상주교회의를 열어 “전 미카엘 신부의 행동이 가톨릭 사회정의에 벗어난 것이 아님”을 천명하고, <사회정의와 노동자 권익옹호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천주교 주교단의 첫 성명서였다. 천주교 교단은 이 사건을 천주교 박해행위로 규정하며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교황청에서 격려서한을 보내고 정치권도 관심을 보이자 강화도직물협회는 사건에 대한 해명서를 내는 등 태도의 변화를 보이는 듯했으나, 박부양은 끝내 복직하지 못했다.

<사회정의와 노동자 권익옹호를 위한 공동성명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주교단 성명이자 김수환 추기경이 처음으로 발표한 대 사회 메시지였다. 당시 마산교구의 주교로 봉직하고 있던 김수환 주교는 노동착취와 부당해고 등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를 옹호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서 초안을 직접 작성했다. 이 초안은 내용 수정없이 그대로 주교단의 공식성명서로 채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