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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와 한글날
2019년 10월 9일은 훈민정음 반포 573돌을 맞는 날이다.
한글날과 관련해 문익환 목사가 옥중에서 박용길 장로에게 보낸 서신에서 언급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한글날 옥중서신
1986년 5.3인천항쟁으로 네 번째 투옥되었던 문익환 목사는 한글날 이틀 전인 1986년 10월 7일 쓴 옥중서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내일은 한글날이군요, 하루 종일 풀어쓰기나 연습을 하고 있어야지, 76년 한글날 그 누구와 함께 한글 풀어쓰기운동을 시작하려고 했었는데 잘 된거죠, 단순히 글자를 다듬는데 멎지않고 문법적인 문제도 많이 생각할 시간을 얻었었으니까.“
박용길 장로의 답장
이 편지에 대해 박용길 장로는 한글날 당일 쓴 답장에서
”오늘은 한글날. 당신 같이 한글을 사랑하시는 분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날이지요.“
- 중략 -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하셨어요? 한글 풀어쓰기: 한글을 사랑하는 최햇빛(78) 할아버지가 부인 이름을 ‘포그니’라고 지어 고치는데 설득시키기 힘들었다는 신문기사 재미 있었어요.“
라고 쓰기도 했다.
문익환과 한글풀어쓰기
앞서 언급한 편지에서 언급된 '그 누구'는 장봉선씨로 그는 5벌식 타이프를 발명했던 한글 기계화 연구가이자 한글서체 연구가로 한글 풀어쓰기에 앞장섰던 이기도 하다.
한글 풀어쓰기는 문익환 목사가 성서번역 다음으로 중시했던 일이다. 문 목사는 이 일에 오랜 동안 앞장서서 관여해왔으며, 1980년 안기부에서 55일간 조사받을 때 조사관들에게 한글 풀어쓰기를 설명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닿소리(자음)와 홀소리(모음)을 로마자처럼 풀어서 쓰자는 운동은 이미 주시경 선생부터 시작되었지만 오랜 동안 주장으로 묻혀 있었다. 1970년 한글학자인 최현배 선생이 사망한 뒤 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이 운동은 1971년 ‘한글풀어쓰기연구회’가 만들어지면서 다시 재개되었다. 문 목사는 이 때 허웅 선생 등과 함께 이 연구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글날의 역사
참고로 한글날 기념식이 처음 열린 것은 한글 반포 480년이 되는 해인 1926년. 당시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 등이 11월 4일 기념행사를 열었다. 기념행사가 10월 9일이 아닌 11월 4일에 열린 이유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나온 날짜가 9월 29일(음력)이었기 때문이다.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혜례본에서 책 발간일이 9월 상순으로 기록되어 있어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게 되었다.
한편 북한은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삼아 기념하고 있는데, 이는 반포일이 아닌 실록에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기록이 쓰인 날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