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반대운동
5·16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박정희 정권은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을 들여와 경제정책과 정치자금으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바라는 국민 여론과 달리, 경제적인 지원에 초점이 된 굴욕적인 한일협정은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왔습니다. 국민들은 1964년 3월부터 전국적인 반대 시위를 시작했고, 6월에는 1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 외각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인 1965년 2월 ‘한일기본조약’ 에 합의하고, 6월에는 정식 조인을, 그리고 8월에는 국회 비준을 강행했습니다. 이에 야당과 시민, 학생들은 다시 적극적인 한일협정 조인과 비준 반대운동에 나섭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폭력적인 진압과 군대까지 동원한 위수령 선포, 시민과 학생에 대한 구속과 수배, 휴교령, 언론통제 등 폭압적인 방법으로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억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