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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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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목영주
면담자
정호기, 양라윤
구술일자
2023.7.17.
구술장소
강릉 한살림
구술시간
3시간 23분 39초

구술컬렉션 > 1970년대 민주화운동 > 유신 후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목영주는 1947년 1월 경기도 용인군에서 출생했다. 대한중석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는 1958년에 사망했다. 1962년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봄 상경하여 종로 2가 관철동의 제일제약주식회사에 입사했다. 얼마 후 친구 소개로 견지동 30번지의 휘문출판사로 이직했다. 출판사의 특성상 지성인들과 안면을 갖게 되었고, 함석헌, 이희승 등의 강연을 들었다. 그리고 ≪씨알의 소리≫, ≪대화≫, ≪현존≫을 읽으면서 사회의식을 형성했다. 1969년경 강원도 춘천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1970년에 춘천지사장으로, 1971년 강릉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1970년대 강원도 춘천과 강릉은 민주화운동의 기반과 활동은 희미했다. 특히 강릉은 불모지와 다름없었다. 강원대의 영향은 춘천 중심으로 미쳤다고 봐도 그르지 않다. 강릉은 천주교와 천주교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이 힘겹게 전개되었다. 목영주는 춘천에서는 죽림동성당을, 강릉에서는 임당동성당을 매개로 활동했다. 목영주가 몸담았던 주요 단체는 명경회, 강릉신협 등이었다. 강릉의 천주교는 원주교구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그래서 목영주의 활동은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등의 지향과 유사했다. 1979년 6월 29일 감시를 받고 있던 함석헌 댁을 방문한 바 있고, 1980년 3월 1일 함석헌을 강릉으로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었다. 1980년 초반에는 하슬라학당을 설립 운영했으며, 1986년에는 ≪새벽들≫을 발간했다.

구술내용 요약

- 용인에서 출생, 가족사, 고향과 가족에 대한 회고

- 한국전쟁기의 고충, 중학교 졸업, 한국전쟁기 피난 

- 아버지의 대한중석 취업, 중학교 졸업 후 상경

- 제일제약주식회사 취업

- 친구 소개로 휘문출판사 입사

- 함석헌,이희승 강연을 듣고 영향을 받음

- 전남, 강원도와의 인연

- 천주교 입문, 명경회

- 강릉신협 참여, 강릉신협 이사로 합류, 활동 사항

- 원주와 강릉의 천주교와 사제, 신자의 활동, 강릉의 재야인사, 종교계 인사

- 유신 후반기 강릉의 상황, 김지하와의 만남

- 강원도의 민청학련, 1970년대 후반 강릉의 정서

- 강릉에서의 가톨릭농민회

- 1979년 6월 29일 함석헌 자택 방문, 함석헌의 강릉 강연 

- 1980년대 강릉의 상황, 민주화의 봄 국면 강릉, 강릉의 6월항쟁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1979년 함석헌 선생 댁 방문 연행, 민주회복국민회의 공동의장 제도가 생긴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