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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철

구술자소개

구술자
성락철
면담자
정호기, 양라윤
구술일자
2023.7.18.
장소
원주시 무위당협동조합
구술시간
3시간 40분 51초
구술아카이브 > 1970년대 민주화운동 > 유신 후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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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내용 요약

성락철은 1953년 10월(음력) 강원도 원주시에서 출생했다. 부모님은 한국전쟁기 월남민이었다. 아버지는 진보당에 참여했고, 장일순, 윤길중 등과 관계를 맺고 있어서 그 영향을 받았다.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업을 돕다가 1974년 춘천의 강원대 농화학과에 진학했다. 강원대에서는 거멀못과 인연을 맺는다. 거멀못은 춘천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청년들의 모임으로, 이들은 지역 민주화운동의 중심적인 인물들로 성장하고 활약한다. 성락철은 거멀못의 운영 방식과 특성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거멀못은 1977년 강원대에 언어문화연구회를 동아리로 등록하여 공개 활동을 하는데, 성락철은 1979년에 회장이었다. 늦은 나이로 대학에 입학한 관계로 1975년부터 1976년 원주에서 군 복무를 하고, 1977년에 복학했다. 복학한 후에는 학교 인근에서 ‘큰 걸음 서점’ 설립과 운영을 주도했고, 천주교 춘천교구 교육원 야학운동에 참여했다. 1979년 9월 3일 강원대에서 발생한 시위에 연루되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12월 석방되었다. 석방된 후부터 천주교회 신자가 되었다. 1980년 3월 10일 강원대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었고, 5월 18일 예비검속되어 보안대로 연행되었다. 제2군단 헌병대 영창에 감금되어 재판받았고, 10월 항소심에서 선고유예로 석방되었다. 이후 원주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에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참여했다.


- 원주의 지역적 특성과 가족사, 한국전쟁기 함경도에서 월남한 부모님

- 진보당, 장일순, 원주의 천주교

- 가족의 생활과 경제, 경제적으로 힘겨운 상태에서 학업

- 가족이 두부로 생계를 잇게 된 경위, 또래에 비해 진학이 늦어진 이유

- 1974년 강원대 농화학과 진학, 민청학련과 최열, 민주화운동에 관심

- 거멀못과 인연, 거멀못의 공부

- 1975∼1976년 원주에서 군 복무, 1977년 강원대 복학

- 1970년대 후반기 원주에 머물던 민주화운동 관련자들

- 1977년 거멀못의 강원대 공개 동아리 언어문화연구회

- 1977년 큰 걸음 서점, 1970년대 후반기 강원도의 상황과 민주화운동

-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 구속

- 1979년 9월 3일 강원대 시위, 1980년 민주화의 봄 국면의 강원대, 1980년 3월 강원대 복학

-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 위원장, 지학순 주교가 설립한 원주 진광고의 특성

- 강원도의 공안 기구, 1980년 5월 예비검속으로 연행, 조사

- 1980년 5월 예비검속으로 연행되어 조사와 재판, 1980년 10월 석방과 이후의 활동

- 1980년대 중반 이후 강원도 민주화운동

- 1970년대 후반 강원도 민주화운동이 삶에 미친 영향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23_유신 후반기 민주화운동_구술자료 상세목록_성락철.pdf 13142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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