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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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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박명규
면담자
정호기, 양라윤
구술일자
2023.7.3.
구술장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구술시간
3시간 4분 48초

구술컬렉션 > 1970년대 민주화운동 > 유신 후기와 80년대 전반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52 경북 청송군 출생

1973 경북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 입학

유신반대 집회 주도

1975 경북대 시위 주도→ 4. 23. 자수, 집시법 위반 구속, 경북대 제명

1977 계명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1978 정통문화연구회 결성

1978.9.21. ‘메아리 야학’ 설립

1978.9.22 ‘대구양서이용협동조합’ (한양서점) 창립

1979.9 9. 4. 연합시위, 9. 7. 경북대 시위 관련 활동

1979.10.25 유신반대시위, 무기정학 처분

1980.3 총학생회조직준비위원회 의장 (경제과 4)

1980-5.16 학원‧사회 민주화 투쟁(시국성토대회, 시민가두시위)

1980.11.12 정치활동 규제 대상자 (1983. 2. 25. 해제)

1987.6.25 대구양서이용협동조합 (재)결성

1988 한겨레민주당 창당( 대구‧경북지부 청송‧영덕군 활동)

구술내용 요약

박명규는 1952년 경북 청송군에서 출생하고,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또래들보다 늦게 1973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입학했다. 정치외교학과는 1970년대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과였다. 강기룡의 소개로 한국풍토연구회에 가입했다. 한국풍토연구회는 경북대 학생운동의 중심 맥을 잇는 동아리로 1971년 11월 결성되었고 1972년부터 신입생을 회원으로 받았다. 박명규는 1973년에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선배들의 일을 도왔다. 1974년이 되자, 선배들은 뭔가 일이 발생할 것 같다며, 군대로 몸을 피하라고 했다. 군 복무를 하던 중 민청학련 사건이 일어났다. 1975년에 복학해서 민주화운동을 재개하던 중, 4월 9일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다음 날 경북대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박명규는 이 일로 인해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경북대는 제적 처분을 내렸다. 1977년 3월 계명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계명대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1978년 9월 대구양서이용협동합을 창립했는데, 비용의 상당 부분은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대구양서이용협동조합은 부산의 최준영과 연계해 추진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메아리야학 설립과 운영을 지원했다. 계명대에서는 KSCF의 역할도 주목해야 한다. 박명규도 KSCF 회원이었다. 1979년 10월 25일 계명대에서 유신반대 시위가 발생했다. 박명규는 11월 5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연행 및 구속되었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으며, 12월에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1980년 3월 14일 복교하여 ‘학생회조직준비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5월 중순 남부경찰서로 연행되었고 계엄사를 걸쳐 50사단 헌병대에 수감되었다. 1980년 9월경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통련 등에 참여하는 등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1980년대 중반에 청송으로 귀향하여 과수원 농사를 지었다. 청송에서도 농민운동을 비롯해 이런저런 일에 도움을 주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1975년 4월 10일 시위와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