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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헌
사업개요
- 민주화운동 원로인사
- 2018년 '민주화운동 원로인사' 구술 수집을 통해 국내외 민주화 현장에서 헌신한 원로인사 3인의 생애사를 채록했다. 구체적으로는 6월 민주항쟁 당시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역임한 지선 스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투신한 권오헌, 미주 지역 인권운동에 기여한 차종환을 대상으로 하며, 이들의 활동 궤적을 심도 있게 기록한 구술 자료를 생산함으로써 민주화운동사의 사료적 공백을 메우고 연구 지평을 확장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권오헌
- 면담자
- 이광희
- 구술일자
- 2018.6.18.~7.27.
- 구술장소
- 구술자 자택
- 구술시간
- 430분
구술컬렉션 > 재야운동 > 부문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91~현재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2010~2018 한국진보연대 고문
2001 6.15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공동대표
2000 평양 방문 (조선노동당창건 55돌 경축기념행사 초청)
1999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
1979 남민전사건으로 체포, 3년 4개월 복역
1974 유신반대,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 조직사업
1968 통일사회당 입당, 문화국장으로 활동
- 구술내용 요약
-
권오헌은 1937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에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시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우수한 두뇌로 탁월한 성적을 보였지만 결국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바로 청소년운동에 뛰어들었다. 학업을 계속하고 싶어서 잠시 상경하기도 했지만 급박한 가정형편으로 다시 귀향하고 결국 군에 입대하였다. 군 생활 중 정의감에 불타 이승만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지하조직을 만들어 적발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무사했고 이어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잡았다.
군 제대 후 잠시 충북 단양의 시멘트공장에 취업을 하기도 했지만 중장비 기사를 하면서 통일사회당에 입당했다. 이후 통일사회당 문화국장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문인들과 교류를 했다. 이때 만난 임헌영 씨의 추천으로 1977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에 가입했다. 남민전은 1970년대 하반기 긴급조치 9호 등으로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유신독재의 폭압이 자행되던 상황에서 반외세 민족자주, 반독재 민주화를 내걸고 현장투쟁을 수행한 조직이었다.
구술자는 중장비 기사로 일하고 공개조직인 통일사회당 활동을 하면서 비공개 조직인 남민전활동을 병행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활동했다. 결국 1979년 체포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후 최종적으로 3년 4개월 옥고를 치른 끝에 만기출소했다. 구술자는 출소 후 구속자와 동료석방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끝에 1988년 남민전사건 복역자 전원 석방을 성사시켰다. 이후 민가협양심수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비전향장기수를 전원 석방시켜 북으로 송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외에도 각종 사회민주화운동과 반전평화운동에 앞장섰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올바른 과거청산운동,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운동 등을 하고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용산참사, 쌍용차문제, 천안함사건 진상규명, 제주해군기지 건설저지, 통합진보당 탄압 대응, 범민련남측본부 탄압 대응 등의 활동을 했다. 또 박근혜 정권 하에서도 세월호참사대책, 평양시민 김련희 씨 송환추진, 백남기 농민 사망대책, 사드배치 반대운동, 박근혜 퇴진운동 등에 관여했다. 구술자는 현재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으로서 열악한 건강상태에도 불구하고 양심수 석방, 사회민주화 및 반전평화운동에 온 힘을 쏟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남민전사건으로 복역한 뒤 출소하여 본격적으로 양심수 석방운동을 전대하고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했던 일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