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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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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권영길
면담자
차성환
구술일자
2022.8.9.(1차), 8.10.(2차), 8.11.(3차), 8.12.(4차), 8.16.(5차), 8.17.(6차), 8.20.(7차), 8.21.(8차)
구술장소
구술자 자택
구술시간
1286분

구술컬렉션 > 재야운동 > 부문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71-1987 서울신문 기자 및 파리 특파원
1988-1994 언론노련 위원장
1990-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 의장
1993-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공동대표
1995-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1997- 민주개혁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1997- 국민승리 21 대표
1997- 제15, 16, 17대 대통령 후보
1998 제17, 18대 국회의원
2000- 민주노동당 초대 당 대표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는 1941년 일본에서 출생하여 해방과 함께 부모님의 고향인 경남 산청으로 이주했다. 부친은 해방 공간에서 변혁운동에 투신하셨고 6·25전쟁이 나자 산청군당의 간부였다가 9·28 이후 빨치산으로 입산했다. 이로 인해 가족들이 고초를 겪었고 구술자는 부산에 사는 숙부댁으로 가서 남부민초등학교를 다녔다. 남부민초등학교 시절 구술자는 인근의 쓰레기 하치장 주변에 모여 사는 불우한 아이들과 교류한 경험이 있다. 구술자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부산의 경남중학교로 진학했고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 박빙의 차로 낙선하여 부회장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경남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독서회 모임, 옥스퍼드라는 동아리 활동 등을 했고 도서관에서 독서를 통해 나름대로 사상적 지향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 시절에 구술자는 농민운동을 하기로 뜻을 세우고 김해로 현장조사를 하기도 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서울대 농대로 진학했다. 하지만 농대가 농업 연구자를 양성하는 곳임을 알고 자신의 선택이 적절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게다가 생활고도 겹쳐 1학년만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군에서는 경기도 연천군에서 근무하면서 학보병으로 차별도 겪고 박정희의 심복이었던 윤필용의 위세를 보며 박정희가 처음부터 원대복귀할 의사가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제대 후에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숙부에게 알리지 않고 부산에서 입시 과외교사를 하며 지내다 복학했다. 복학 후에도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신문기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대한일보에 입사했지만 회사가 너무 엉망이어서 곧 퇴사했다. 이 무렵에 결혼을 했고 구술자는 다시 서울신문사에 입사했다. 유신 선포를 전후하여 구술자는 기자생활을 하는 한편으로 박정희를 제거하기 위한 행동에 착수한다. 뜻 맞는 친구들 그리고 당시 군인으로서 쿠데타을 꾀하던 사람들과 비밀히 연결되어 거사를 준비했으나 군사쿠데타의 방식으로 박정희를 제거하는 것이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는 판단으로 포기했다. 구술자는 1974년 8월 이른바 문세광 사건이 일어났던 장충체육관에서 기자로서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구술자는 1970년대 말, 오래 꿈꾸던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구술자에게 프랑스는 혁명의 나라로서 새로운 문물을 접하기에 마땅한 곳이었다. 처음에는 형식만 통신원 자격으로 갔으나 김형욱 사건이 일어나면서 서울신문의 특파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구술자는 프랑스의 자유로운 문화와 선진적 복지시스템을 경험한다. 

그리고 6월항쟁 이후 귀국하면서 구술자는 막 태동하기 시작한 언론노조의 간부를 맡고 계속해서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언론노련, ILO 공대위, 전노대, 업종회의 등의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1995년 민주노총을 건설하고 위원장에 취임한다. 그리고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날치기 통과시킨 노동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노동법이 개정되기는 했으나 보수 양당이 합의한 개정법은 너무 문제가 많았다. 이에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절감하고 1997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다. 이후 진보정당 건설에 매진하여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당 대표가 되었다. 2002년과 2007년 대선에도 출마했고 창원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3선 의원으로 의정활동을 수행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내의 분파 투쟁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한 점을 막지 못한데 대해 구술자는 통한의 심정을 술회했다. 이후 구술자는 건강이 악화되어 고생했으나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다. 구술자는 자신의 삶이 노동자, 민중을 위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분투해온 삶이라고 평가하면서 인류 앞에 닥쳐온 위기의 시대에 진보정치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구술자의 활동 중 주요 성과로 꼽히는 노동법 개정을 위한 총파업 상황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