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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수
사업개요
-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2차년도 과제인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 구술채록은 1970년대 말부터 5·18 민주화운동, 그리고 광주미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이어지는 시국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사건에 직접 가담한 5명 중 생존자 3명을 선정해 구술 자료를 수집하며, 방화 사건의 구체적인 실행 과정과 인물별 역할, 피해 현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사건 자체에 대한 기록을 중심으로 하되 관련자들의 전후 삶과 활동 궤적을 함께 채록함으로써, 광주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지닌 역사적 맥락과 개인의 생애에 미친 영향을 조명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임종수
- 면담자
- 정호기, 김경자
- 구술일자
- 2019.6.26
- 구술장소
-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 구술시간
- 220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59년 전라남도 광주시 출생
1979년 3.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입학, KUSA(유네스코 학생회) 연극반 활동
1980년 5. 5·18민주화운동 참여
1980년 8. 학생운동, 가톨릭농민회 광주시 분회 결성
1980년 12. 9.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 참여
1983년 6. 25. 출소(징역 2년 6개월), 천주교 입교(1981년)
1995년 8. 광주광역시청 공보관실 공무원 발령
2017-2018년 광주광역시 5·18기념문화센터 소장
2019년 현재 (재)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
- 구술내용 요약
-
임종수는 1959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출생했다. 1979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구술자의 대학 생활과 인식은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학생이었다. 2학년 초에 학원자율화의 일환으로 총학생회가 구성되면서 박관현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비범하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 임종수는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 작전과 무수하게 생겨난 희생자들의 모습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해 여름 그가 속해 있던 KUSA(유네스코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습모임 결성을 시도했는데, 발각되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8월 말경, 임종수는 김창중의 소개로 정순철과 김동혁을 만났다. 김창중은 임종수와 비슷한 연배였는데, 학생은 아니었고, 가톨릭 관련 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술자는 이들과 함께 한국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 광주분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1980년 12월 5일 개최된 ‘가농 추수감사제 및 농민대회’가 계획처럼 시위로 연결되지 않자,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의 부각과 정치·사회적 여론 환기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리하여 12월 9일 김동혁, 정순철, 윤종형, 박시영과 광주미문화원방화를 결행하게 되었다. 이 일로 임종수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한 후, 1983년 6월 25일 출소했다. 임종수는 최후 변론에서 방화의 정당성을 강도 높게 주장하여 집행유예로 감형되지 않았다.
임종수는 출소 직후 5‧18민주화운동 상황극을 오디오 테이프로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그리고 1984년 3월 전남대학교에 복적이 되었고, 그해 8월 24일 복권되었다. 1986년 2월 졸업한 후, 전남지역의 사회운동단체에서 일하다, 1988년 상경하여 ≪엔터프라이즈≫에 취업했다. 취업 몇 달 만에 회사가 위장폐업을 했고, 구술자는 노조 위원장으로 선임되어 항거했다. 이후 ‘해직언론인협의회’ 사무국장 등으로 일했고, 정치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95년 8월에 광주시 언론 담당 공무원이 되었고, 2019년 6월 30일 퇴직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광주미문화원방화를 계획하고 실행하게 된 배경과 동기 그리고 진행 과정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