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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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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정인재
면담자
이상훈
구술일자
2019.9.27(1차),10.5(2차)
구술장소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스튜디오
구술시간
186분

구술컬렉션 > 재야운동 > 지역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43년 경기도 김포 출생

1965년 고려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경제학과 졸업

1973년 천주교원주교구 재해대책사업위원회 상담원

1985년 천주교원주교구 사회개발위원회 상담원

2000년 천주교원주교구청 총무부장

2010년 원주밝음신협 이사장

2013년 사회적기업 노나메기 이사장

2017년 원주가톨릭센터 관리부장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는 제헌의회 정준 의원의 아들로 김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전쟁이후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에 입학, 고대 4H연합회 회장이 된다. 군 생활 이후 집안에서 운영하는 인쇄소에 근무하다가 전국4H연합회 회장 김준기와 황민영의 재해대책사업 참여권유로 원주로 내겨오게 된다. 재해대책사업위원회에 참가, 상담원을 하며 농촌의 작목반 구성, 신협 조직, 소협 조직을 추진한다. 새마울운동 시기 통일벼 재배를 위한 농약과 화학비료의 남용으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유기농, 자연농법을 보급하였다. 마을의 작목반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유통하기위한 소비자협동조합을 추진하면서 이 사업은 원주소비자협동조합, 서울 한살림농산,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발전하게 된다. 김지하의 <원주보고서>는 생명운동이 대두되었음을 말한다. 학생시절에는 운동권은 아니었고 재해대책위 상담원 시절 YWCA위장결혼식에 참여하였다가 구속이 된다. 이를 계기로 전국가톨릭농민회 부회장에 선출되고 대전에서 열린 임원회의에서 김현장을 만나게 된다. 김현장과 원주로 와 당시 가톨릭원주교육원 원장인 최기식 신부에게 소개하였고, 김현장은 원주교육원에 있으면서 김영애를 통해 원주지역 대학생들과 교류를 갖는다. 교육원에서 최기식 신부의 집전으로 문부식과 김은숙의 결혼식 이후 원주로 피신하는 학생들이 많아짐에 따라 함세웅 신부를 통해 자수를 하게 하지만 이로 인해 최기식 신부와 이창복 선생과 같이 구속된다. 원주가톨릭센터는 지역 운동권의 거점이었고 가톨릭농민회, 가톨릭학생회, 정의평화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캠프롱 기지반환운동을 벌인다. 화상경마장 반대 운동은 원주시민 모두의 힘으로 막아낸 사건이다. 원주교구청의 총무부장으로 지역운동의 후원자역할을 자임하였다. 재해대책위원회나 협동조합운동 등이 민주화시기 큰 힘이 되었다고 판단하며 무위당 장일순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부산미문화원사건 당시 최기식 신부와 이창복, 구술자의 활동 및 구속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