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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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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윤준하
면담자
신동호
구술일자
2019. 10. 18
구술장소
현대사기록연구원
구술시간
151분

구술컬렉션 > 1970년대 학생운동 > 고려대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9.06 범고대민주수호투쟁위원장

1969.07 반독재전국학생총의 의장

1974 - 금융노련 전문위원

1975–80.1 아시아자동차 총무(인사)과장

1981 -1989 도서출판 인간사 설립, 대표

1988 - 한알 설립, 사장

1990 - 공해추방운동연합 집행위원

1992 - 유엔환경회의 한국위원회 집행위원, 재정위원장

1993 - 서울환경운동연합 의장 겸 중앙상임집행위원회 위원장

1993 -현재 시민환경연구소 이사, 이사장

2005 -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2008 - 제7기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위원장

(전)환경운동연합 에코생활협동조합 이사장

구술내용 요약

용산고 3학년 때 무즙파동의 여파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교장선생님이 경기중으로 전출된 것을 반대하고 항의하는 활동을 했다. 그 바람에 재수를 하게 되어 무전여행도 하고 ‘초석회’라는 서클을 만들었다. 고려대 정외과에 입학해서는 시험을 쳐서 한국민족사상연구회(한사회)에 가입했다. 고려대 학생운동은 반탁운동 이철승과 찬탁운동 이중재의 두 맥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한사회와 한맥으로 각각 이어졌다. 이중 멤버십도 허용됐다.

3선개헌반대투쟁이 본격 시작된 1969년 6월 27일 시위에 조춘구 총학생회장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단과대학 회장단이 의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믿는 사람이 반대했다. 그래서 내가 주도하고 자기는 2선으로 나오기로 은밀히 약속한 것이다. 그날 사회를 보기로 약속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군에서 막 제대해 복학하려던 이문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 바람에 그는 우리나라 대학 사상 초유의 ‘재입학 불허’라는 처벌을 받았다. 7월 4일까지 연속시위 끝에 7월 5일 이종우 총장의 조기방학 조치와 대규모 징계로 투쟁은 중단되고 지도부는 와해됐다. 그래서 타 대학과 연대하여 전국반독재학생총의를 조직하고 고려대 역사상 최초로 총장 축출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교련반대투쟁은 졸업생 신분으로 관여했다. 한사회가 지원한 김병수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불을 붙이는 게 중요해 3월 2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오기로 했던 쪽에서 나오지 않아 불발되었다. 하지만 총단에 들어간 후배들의 각오를 파악하고 그때부터 손을 떼고 도망 다니다가 8월 군대 입대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교련반대운동 준비 과정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