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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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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김문수
면담자
이영재
구술일자
2020.7.22.
구술장소
서울대 민주동문회 사무실
구술시간
167뷴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강제징집 녹화사업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82 서울시립대학교 무역학과 제적

1990 인천노동운동 단체협의회 사무국장

1991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민중생존권쟁취 특별위원회 사무차장

1991-1992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준비위 조직 총무위원회 간사

1992 백기완 선거대책위원회 기획위원장

1992 사회당추진위 사무총장

구술내용 요약

김문수는 1961년 경북 안동군에서 출생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중학교 과정을 비인가 시설에서 공부하고, 검정고시로 이수했다. 성동기계공고에 입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했다. 연합고사를 보고 영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영동고등학교는 명문고였으며, 진보적인 학교였다. 

1981년 3월에 서울시립대학교에 입학하고, 1982년 무역학과로 진급했다. 무역학과에도 진보적인 교수들이 있었다. 서울시립대는 입학 정원이 적었고, 등록금이 낮았다. 1981년에 민족문화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1982년 10월 초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개최된 원풍모방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영등포경찰서에 구금되었다. 경찰은 조직사건을 만들기 위해 거의 매일 밤마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데려가 폭행과 고문에 의한 조사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강제징집 되었다. 103보충대를 거쳐 강원동 원통 소재 12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신병교육대에서도 폭행을 당하고 주시를 받았다. 12사단 오지에 배치되어 정말 고생했다. 부대 내에서도 보안대로부터 주기적으로 감시를 당했고, 고참이 되었음에도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전역 전날까지 근무를 섰다. 전역을 3개월 앞두고 사단 보안대로 호출되어 1주일간 폭행을 동반한 녹화 교육을 받았다. 휴가 중에도 감시를 받아 외출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이윤성의 죽음은 분명 살인이다. 

1985년 5월 복학을 포기하고 건설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조합을 조직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86년에는 전혀 예기하지 않게 건국대 점거농성사건에 연루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동현장에 들어가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1988년 취업했다. 그러나 신분이 탄로 나 퇴출이 되었고, 여러 회사를 전전했다. 이후 인천지역에서 합법과 비합법 노동운동을 했다. 1990년부터는 국민연합과 사회당 등에서 활동했다. 1992년 4월 사노맹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 상태가 되었고, 1999년에 해제되었다.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그리고 사회운동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특히 분노조절장애가 느껴질 정도로 심각하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강제징집되어 철책 근무(사천리 1003일 고지)를 서야 했던 사연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