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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김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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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김형보
면담자
이영재, 정호기
구술일자
2020.7.9.
구술장소
서울시 구술자 사무실
구술시간
132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강제징집 녹화사업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2. 서울시 성북구에서 출생

1981. 3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입학

1981. 11. 25 학내 시위로 서대문 경찰서 연행, 육군 보병 제5사단으로 강제징집

1982. 6월 경 군 내에서 私信 사건으로 보안대 연행되어 보안사 공작분실(추정. 후암동), 보안사 대공분실(서빙고동)에서 약 30일간 조사 후 구속

1982. 8월 경 국가보안법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1년 6월, 집행유예 1년 6월 선고

1984. 6. 14 만기전역

1985. 인노련 해투위 위원장

1986. 민주주의민족통일노동자동맹 중앙위원, 기관지 “노동자의 깃발” 중앙편집위원

1993.~2009. 와우북 등 중소/벤처기업근무

2019. 7월 ~ 서울시설공단 상임이사

구술내용 요약

김형보는 1962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1981년 3월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누나가 기독교 사회운동에 몸담아서 일찍이 민주화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대학교 면접날 누나의 소개로 전상규를 만났으며, 당일 ‘평화문제연구회’에 가입했다. 써클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으며, 학내의 학생운동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했다. 1981년 11월 25일 학내 시위에서 경찰에 연행되던 한민호를 구출하다가 연행되었다. 이 일로 강제징집되었다.

1981년 11월 28일 101보충대로 이송되었고, 5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27연대 ○대대 5중대로 배치받았다. 군 생활은 만연한 폭행을 제외하고는 특별하게 문제가 없었으나, 1982년 6월 평소 친밀했던 부사관에게 편지를 부쳐달라고 한 일이 사건이 되었다. 사단보안대를 걸쳐 서울 국군보안사령부, 후암동 소재 보안사 공작분실, 서빙고 대공분실에서 무자비한 폭력과 고문을 동반한 조사를 약 한 달 동안 받았다. 사단 헌병대 영창에 수감된 상태에서 군사재판을 받았는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36연대 13중대로 재배치되어 복무하다가 1984년 6월 14일 전역했다. 군사재판을 받은 이후에는 군 생활이 상대적으로 편해졌다. 전역한 뒤에는 복학을 포기하고, 1991년경까지 인천 일대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참여했던 노동운동 조직들이 탄압 등으로 해체되면서 다양한 영역과 부분에서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군복무 중 사신(편지)사건으로 보안사령부로 연행되던 상황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