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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
사업개요
- 강제징집 녹화사업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3차년도 과제인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 구술 채록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기 생산된 자료 및 연구 성과의 사실관계를 재규명하고, 보다 완전한 역사 자료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 및 각 대학 민주동문회와 협의하여 대학·지역·유형별 사례를 고려한 구술 대상을 선정했다. 구술 채록에는 서울시립대, 연세대, 전남대, 한국외대, 경희대, 동국대, 서울대, 성균관대, 경북대, 고려대, 대구대 등 전국 주요 대학의 사례를 포괄했다. 본 사업은 1980년대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구체적인 실행 체계와 세부 피해 사례를 파악하고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실상을 실증적으로 기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노영필
-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 구술일자
- 2020.8.7.
- 구술장소
- 민주인권기념관 회의실
- 구술시간
- 209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강제징집 녹화사업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60 해남 옥천에서 출생
1979 광주 전남고등학교 졸업
1988 전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1983년 IPU, ASTA 반대시위 참여, 현장 체포 후 강제징집
1984 군복무 중 보안부대 조사
1989 고등학교 교사, 철학과 대학원입학
1991 학교 민주화와 전교조 활동으로 강제 사직
1995 동경대학교 대학원 동아시아문화학과 수학
2003 전남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철학박사
2000 중학교 교사로 복직
- 구술내용 요약
-
노영필은 1960년 전남 해남군에서 출생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광주시 소재 전남고로 진학했다. 전남고 교사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79년 2월에 졸업했으나, 질병으로 입원과 요양을 하여 1981년 3월 전남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전남대에서는 사회조사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사회조사연구회는 박관현 등이 몸담았던 곳으로 학교에서 유명한 서클이었다. 총학생회 건설운동에 참여했다. 1983년 9월에 계획과 달리 학내 시위에서 경찰에 연행되었다. 10월 3일 31사단으로 이첩되어 입영 절차를 밟았다. 101보충대를 걸쳐 6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곳에서 다른 학교 강제징집자들을 만났다.
6사단 2연대 1대대 1중대에 배치되어 군대 생활을 했다. 특수학적변동자라는 이유로 괴롭힘은 없었다. 다만 소속 중대가 GOP 근무에서 배제되었는데,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단 항공대에 파견되어 경비를 서다가 1984년 3월경 사단 보안대로 호출되어 폭행과 고문을 동반한 조사를 받았다. 1984년 가을경 소속 중대가 새로운 사단 창설을 위해 이동했는데, 경북대 노명식과 배제되어 천안 소재 군단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후 7연대 박격포 전투지원 중대로 재 배속되었다. 전역 3개월을 앞두고 소대장과 갈등을 빚었다.
1986년 전역 이후 학교 상황을 보니, 많이 달라져 있었다. 2학기 복학 이전에 철학 정풍운동을 벌여 갈등을 빚었다. 1988년 2월에 졸업하고 한살림운동을 1년간 하다가 1989년 옥천여상에 교사로 임용되었다. 1990년 12월에 결혼하고, 1991년 2월에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되었다. 1992년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했으며, 시간강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에 특별채용 되었고, 2003년에 전남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강제징집을 당해 31사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연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