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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사업개요
- 민청학련 사건
- ‘유신 전기 민주화운동 역사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된 이번 구술 채록은 1972년 고려대 ‘민우지 사건’, ‘민청학련 사건’, ‘자유언론실천운동’ 등 세 가지 주요 사건을 기록했다. 공간적 범위는 서울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전개된 춘천, 대구, 광주 지역을 포괄하여 유신 체제 초기 저항 운동의 양상을 담아냈다. 사건 발생 후 50년이 경과하여 현존하는 문헌 자료가 극히 희소한 상황에서, 민청학련 시위 주도자 등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을 확보하여 사건의 실체에 실증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비록 시간 경과에 따른 기억의 한계라는 제약이 있으나, 당사자들의 풍부한 진술을 통해 사료적 공백을 메우고 유신 전기 민주화운동을 역사화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자료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이철
- 면담자
- 차성환
- 구술일자
- 2021.9.5.(1차), 9.6.(2차)
- 구술장소
- 서울시 종로구 회의실
- 구술시간
- 432분
구술컬렉션 > 1970년대 학생운동 > 서울대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69 서울문리대 입학, 교양과정부에서 3선개헌 반대투쟁
1969-1972 강제징집으로 군 복무
1972 복학, 10월 유신 경험
1973 서울문리대 10·2시위 주도
1974-1975 민청학련사건 주도 후 구속, 석방 후 사회생활
1980 복학 이후 민주화시위 등으로 구금, 제적 후 사회생활
1985-1997 제12, 13, 14대 국회의원 역임, 1992년 통합민주당 원내총무
1997-1998 도쿄대학, 와세다대학 객원교수
2002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협상 참여
2004 제17대 총선에서 부산에서 국회의원 출마하여 낙선
2005-2008 코레일 사장 역임
- 구술내용 요약
-
구술자는 진주에서 태어나 김해를 거쳐 어린 시절 부산에 정착했다. 부친이 6·25전쟁 때 피난을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좌천을 당했기 때문이다. 구술자는 부산에서 중학교를 거쳐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경기고에서는 문재를 떨쳤지만 생활고와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절망하여 방황기를 거쳐면서 3수를 하여 서울문리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1학년은 공릉동 교양과정부에서 수업했는데 박정권의 3선개헌에 저항하여 교양과정생과 공대생들을 규합하여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학교에서 제적되고 경찰에 연행되어 강제로 입영되었다. 군 생활은 평택의 미군부대에서 했다. 제대 후 복학하니 1972년에 10월 유신이 터졌다. 구술자는 박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어 학습하는 등 학생운동에 매진했다. 다음해 10월 서울문리대에서 10·2시위가 발생했다. 이 시위로 학생들이 유신체제에 깊은 반감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고 새로운 전국적 시위조직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구술자는 유인태, 서중석, 나병식 등과 협의하면서 재야, 종교계, 언론계 등과 접촉하고 전국 단위의 학생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대학생은 서울대 내에서는 문리대, 법대, 상대를, 서울지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전국에서는 서울, 대구, 광주를 축으로 하는 이른바 3·3·3제로 조직했다. 그리고 1974년 3월 7일에 회합을 갖고 구술자가 책임자가 되고 유인태, 나병식, 서중석 등은 제2선으로 후퇴하여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앞서 시도한 경북대, 연세대 등의 시위가 잇달아 실패했고 최종적으로 4월 3일에 동시다발적 시위를 결정하였으나 긴급조치4호가 나오면서 검거 선풍이 불었다. 구술자는 피신하였으나 결국 체포되어 모진 취조를 받았다.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사건을 반국가적 폭력혁명으로 몰았고 인혁당 재건위를 배후조종세력으로 조작하였다. 군사재판에서 구술자는 1심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1975년 2월에 석방되었다. 석방 후 어려움을 겪다가 취업하였는데 10·26사건이 나면서 1980년 봄에 복학하였다. 그러나 5·17쿠데타가 나면서 피신하던 중 체포되었는데 구속은 면했으나 다시 제적되었다. 이후 컴퓨터 관련 잡지사를 하던 중 1985년 2월 총선을 앞두고 김상현, 김승균 등과 선후배들의 강권에 못 이겨 서울 성북구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정계에서 활동하였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도 주도하고 부산의 북구에 출마하여 정형근 후보와 대결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코레일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정계를 떠난 후에는 일본의 마쓰시다 정경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민청학련사건 당시 형 집행의 모순과 구술자의 부친이 청와대에 초청받아 갔을 때 보여준 박정희의 반응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