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한국전쟁 기념행사

3년 1개월 동안의 처절한 전쟁을 통해 남북은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의 피해는 휴전논의가 시작되기 전인 1951년 6월 이전에 발생하였는데, 일부 편차는 있지만 전쟁 기간 동안 남한은 물질적으로 2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보았으며, 민간인 사망 37만, 부상 23만, 납치 8만 이상이 발생했으며, 한국군과 유엔군 사망자 10만, 부상자 30만에 육박하며, 실종자도 9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북한의 경우는 더욱 피해가 심각한데,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200여 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북한군과 중공군 전사자 52만 명, 부상자 40만 명으로 추계되고 있다.
그리고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취약한 산업시설들이 그나마 대부분 파괴되어 그야말로 전국토가 황폐화되었다.
이와 같은 직접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피해는 이후 남북 양측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선 남한의 경우 철저하게 반공주의가 사회 모든 분야에 깊숙이 침투하였으며, 정치적으로도 집권층은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마녀사냥식 용공 매도가 전가의 보도처럼 판을 치게 되는 메카시즘의 광풍이 불어닥친다. 이는 이승만 정권뿐 아니라,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까지 이어져 엄청난 정치적 희생양들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리고 철저하게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미국에 더욱 의존하게 되어, 종속을 심화시킨다. 경제발전도 미국의 원조와 차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안보도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의존도가 한층 높아졌다.
또한 남한의 인구구성에서도 큰 변화가 초래되었다. 북에서 피난온 수많은 실향민들은 도시 인구를 폭증시켰으며, 이들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선봉에서 사회를 더욱 우경화시킨다.
그리고 아래로부터 북한에 대한 증오심이 심각해져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은 사라지고 적대감만 팽배하게 됨으로써 평화통일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그 동안 권위주의적인 정권들은 한국전쟁을 민족 통일을 위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로 삼기 위해 기념한 것이 아니라 북한을 비난하고 극복할 대상으로 국민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