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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관계
1943년에 이미 연합국 지도자들은 카이로 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를 독립시키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의 루스벨트는 장기간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련의 스탈린은 이에 대해 짧을수록 좋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신탁통치 자체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방된 후에 남과 북을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12월에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결정하자 한반도 내의 각 정파들은 반탁과 찬탁으로 극렬하게 분열된다.
이 과정에서도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좌우 합작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논의가 시도되지만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단정을 강력히 주장한다. 결국 이 논의는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과 미소 양국의 냉전 격화로 인해 분단으로 고착화한다. 이후 김구와 김규식의 통일정부 구성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유엔에서의 남한만의 5.10 총선거 결의로 분단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남한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단독 정부를 수립하고, 북한은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자신들만이 정통성 있는 정부라고 주장하며 극한적인 대립이 시작된다. 서로를 ‘괴뢰’라고 부르면서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남한은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북한은 무력에 의한 남조선 적화통일노선을 견지하게 되고 군사적 긴장관계와 함께 서로에 대해 끊임없는 도발을 벌여나간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남한에 대해 무력침공을 감행하여 3년 동안 처절한 동족상잔의 전투를 벌이지만 어느 한 쪽도 승리하지 못한 채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만을 입은 채 53년에 휴전협정에 서명하게 된다.
휴전 이후에도 이승만은 반공을 국시로 삼고 계속하여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며 국민들에게 반공을 주입하기에 바빴다. 각급 학교에 학도호국단을 설치하고, 반공웅변대회, 반공 글짓기 대회, 반공포스터 그리기 대회 등을 개최하여 대북 적대감을 고취시켰다.
자신의 정적들은 간첩죄를 적용하여 처단했다.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을 계승한 국가보안법은 만능의 도깨비방망이였다.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것은 곧 범죄였다.
그리고 해방된 후에 남과 북을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12월에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결정하자 한반도 내의 각 정파들은 반탁과 찬탁으로 극렬하게 분열된다.
이 과정에서도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좌우 합작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논의가 시도되지만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단정을 강력히 주장한다. 결국 이 논의는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과 미소 양국의 냉전 격화로 인해 분단으로 고착화한다. 이후 김구와 김규식의 통일정부 구성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유엔에서의 남한만의 5.10 총선거 결의로 분단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남한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단독 정부를 수립하고, 북한은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자신들만이 정통성 있는 정부라고 주장하며 극한적인 대립이 시작된다. 서로를 ‘괴뢰’라고 부르면서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남한은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북한은 무력에 의한 남조선 적화통일노선을 견지하게 되고 군사적 긴장관계와 함께 서로에 대해 끊임없는 도발을 벌여나간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남한에 대해 무력침공을 감행하여 3년 동안 처절한 동족상잔의 전투를 벌이지만 어느 한 쪽도 승리하지 못한 채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만을 입은 채 53년에 휴전협정에 서명하게 된다.
휴전 이후에도 이승만은 반공을 국시로 삼고 계속하여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며 국민들에게 반공을 주입하기에 바빴다. 각급 학교에 학도호국단을 설치하고, 반공웅변대회, 반공 글짓기 대회, 반공포스터 그리기 대회 등을 개최하여 대북 적대감을 고취시켰다.
자신의 정적들은 간첩죄를 적용하여 처단했다.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을 계승한 국가보안법은 만능의 도깨비방망이였다.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것은 곧 범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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