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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자 : 1960.4.25
분류 : 시위 상황
요약설명 :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4월 25일 오후, 서울에서는 주저앉으려는 정국을 다시 깨우는 교수단의 시위가 있었고, 또다시 대규모 시위의발생을 유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오후 3시, 동숭동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 모인 258명의 대학교수들은 “각 대학교수단 -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라고 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은 시위 시작 전 14개 항의 시국선언을 채택, 낭독하고 오후 5시 45분 교문을 나와 종로, 을지로 입구, 미국대사관 앞을 거쳐 국회의사당 앞까지 행진하였다. 교수들은 국회의사당 앞에 당도하여 시국선언문을 다시 낭독하는 것으로 시위를 마쳤다. 이를 본 시민과 학생들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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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 올린 교수단,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라”절규
일자 : 1960.4.25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65), 권오돈(연세대, 65)교수가 『고대신보』의 오주환 주간이 마련해온 “각 대학 교수단”이란 글씨 밑에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선두에 섰다.“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글씨는 당시 성균관대 교수인 청명 임창순 선생이썼다. 이상은 교수는 “재경(在京) 각 대학교수단”이라고 썼다고 하는데, 당시교수단 시위 사진의 플래카드에는 “재경”은 보이지 않고 “각 대학 교수단”이라는 글자만 보인다(이상은, 226쪽). 일부 기록에서는 “고대생 10여 명이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를 제공”하였다고 한다(안동일·홍기범 공저, 280쪽).그 뒤를 이종우, 이항녕, 정석해, 임창순(성균관대) 교수가 태극기를 펼쳐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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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교수들도 시위
일자 : 1960.4.26
분류 : 시위 상황 > 대구
요약설명 : 성명이 있은 26일 오후 1시부터 경북대학교교수단과 학생 200여 명은 “국민은 원한다. 이 대 통령의 하야를…”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역전 광장에 모여 시위를 감행하였다. 이 시위대는 오후 1시 40분 경 역전에 도착, “이승만 정부는 집권 12년에 갖은 민주반역 행위를 자행하여 부산 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 등의 누적된 실정이 도를 가하더니 3·15부정선거를 하여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도살하였다. 4·19의거, 마산사건 등에 뿌린 3·1정신을 이어받은 젊은 학도들의 의혈을 좌시할 수 없다”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구호를 외친 다음 곧 질서정연한 시위에 들어갔다. 헌병들의 경호 아래 시위행진이 지나갈 때마다 연도에 늘어선 수...